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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04. 2021

군산에 가고 싶어지는 책

배지영의 『환상의 동네서점』

한지승 감독이 연출했던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각자 준비한 이야기를 하고 책에 대해 의견도 나누는 작은 서점이 나온다. 책방 주인이 '너무 잘생긴' 서강준이라는 것 말고도 "저런 서점이 어딨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유토피아적 설정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서점이 우리나라에 진짜로 있다. 전라북도 군산에.


현대중공업과 GM대우가 떠나간 군산에 한길문고라는 서점이 32년째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여기는 배지영이라는 상주 작가가 뭔가 재미있는 일을 계속 꾸미는 바람에 사람들이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러 오는 곳이구나. 그래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하는 택시 기사도 있고, 낮에는 귤과 생강, 밤에는 글과 생각을 판다는 시장 상인도 있구나. 심윤경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데 마침 그 작가가 동네서점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게 신기해 서울에서 군산까지 쫓아오는 사람도 생겼구나.


한길문고의 상주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 덕분에 생긴 직업이다. '서점의 최고 큐레이션은 책을 보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배지영 작가는 '한길문고에 오면 재밌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200자 백일장 대회'와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다. 특히 두 번째 행사는 2등은 없고 1등만 100명이 있는 대회라 참가자 전원이 행복해진다.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고 술술 읽히면서도 군데군데 눈길을 사로잡는 포인트들이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어렸을 때 일요일마다 MBC-TV에서 봤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 원작자가 그  잉걸스 집안의 꼬마 숙녀('꼬맹이'라 불리던) 로라 잉걸스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고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사람도 작품을 발표하고 난 뒤에 몇 번이나 글을 고쳐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첫 책을 낸 지 얼마 안 된 처지라 절대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배지영 작가의 문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내가 쓴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에 속절없이 열광했다.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지만 비건인 김탁환 작가를 만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또 다른 음식점에 가서 시래기 비빔밥을 먹는 배지영 작가를 상상하며 웃었고, 그의 첫 책 『우리, 독립 청춘』의 다정한 리뷰를 써 준 서울 사람 권나윤 씨가 군산 한 달 살이를 마치고 떠나던 날 자동차에서 트렁크를 꺼내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나는 올 1월에 한길문고에 가서 내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북토크를 열기로 했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연기되고 말았다. 누구든 이 책만 읽어도 군산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질 지경인데 나는 어떻겠는가. 군산에 가고 싶다. 한길문고가 있고 배지영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아내에게 군산에 놀러 가자고 말해볼까. 아내는 이미 군산의 맛있는 식당 몇 군데를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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