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4.3 항쟁 71주년을 맞아 다시 읽어보는 현기영의 소설

by 편성준

오늘은 제주 4.3 항쟁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주도에 몇 번 놀러 갈 때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맛있는 음식에만 감탄했지 제주의 역사나 4.3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다가 우연히 2016년에 아내와 놀러 갔던 게스트하우스 책꽂이에 꽂혀있던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삼촌]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소설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아서 그동안 읽지 않고 있었던 거죠. 장편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마찬가지였구요. 오늘 아내가 점심때 전화로 <순이삼촌> 얘기를 하길래 집에 책이 없다고 했더니 마침 4월 3일이니 유튜브 '소행성책방'에서 짧게나마 <순이삼촌>에 대한 방송을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책을 다시 사기로 했습니다. 동네 서점에 전화했더니 재고가 없다고 하길래 동숭동 사거리 <동양서림>에 문의했더니 있다고 합니다. 책을 사서 다시 훑어보고 방송에서 책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순이삼촌> 처음 읽던 날의 일기 '제주의 슬픔'도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제주의 슬픔>

베리 레빈슨 감독이 만든 <굿모닝 베트남>이란 영화를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미군방송 DJ인 로빈 윌리엄스가 멘트를 하고 난 뒤 화면 가득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면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 lWorld'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푸르른 자연 속 사람들도 모두 행복한 표정들이다. 그러다가 2절쯤부터 난데없이 헬기가 등장한다. 헬기에선 기관단총과 화염방사기가 난사되고 그 밑에서는 베트콩들과 베트남 양민들이 고스란히 총탄 세례와 불세례를 받고 쓰러진다. 그런데도 배경음악은 계속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라고 노래한다. 아이러니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워지는 비참하고 잔인한 미장센이다.

제주에 처음 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 풍광에 사로잡혀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나도 이 작고 평화로운 섬이 좋아져서 해마다 내려와 며칠씩 묵고 가게 된다. 하지만 4•3 평화박물관에 한 번 갔다 온 이후로는 똑같은 마음으로 푸른 대지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4•3 항쟁'의 과정과 결과는 알면 알수록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제주도에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배웠다. 섬에 남자가 적은 것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많은 까닭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1948년 '4•3 사건' 때 군과 경찰이 너무나 많은 양민을 무장공비로 몰아 죽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남한 단독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만 단독선거를 반대했었기 때문에 제주도민 자체가 눈엣가시였다. 이승만 정권은 북에서 공산당을 피해 내려온 '서북청년단'을 제주도에 투입시켜 공비들을 '소탕'케 했다. 공산당 때문에 고향도 집도 다 잃은 청년들에게 제주도의 공비들과 그 가족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죽창으로 찔러 죽여도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은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고 이런 정신분열 종자를 이승만은 친히 불러서 일 잘한다 칭찬을 해줬다는 일화를 박물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의 만행은 김두식이 쓴 <헌법의 풍경>에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제주의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다이닝룸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중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었다. 어제 아침엔 아내가, 오늘 아침엔 내가 읽었다. 제주 4•3 항쟁을 최초로 다뤘던 이 소설은 당시 학살현장에서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삼십 년을 더 살다 자살한 마을 어른 '순이삼촌'에 대한 이야기다. 난 순이삼촌이라고 해서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여자였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이모라고 부르듯이 제주에서는 촌수가 애매한 마을 어른들을 남녀 불문하고 '삼촌'이라 부르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군경의 '소개작전' 때 마을 국민학교에서 분류작업을 당하고 짐승처럼 끌려가 밭에서 집단총살을 당했던 순이삼촌은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시체더미 속에서 사흘씩이나 기절해 있다가 살아났던 것이다. 그 뒤 그녀의 삶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대인관계도 제대로 갖지 못했으며 평생 안정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있던, 그래서 거기서 자란 고구마가 목침 만했던 그 밭에 가서 죽은 것이다.

책 뒤쪽에 있는 작가 연보를 보니 현기영은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난 다음 해인 1979년에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삼일 동안 고문을 받고 감옥에 구치되는 등 1개월간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1980년에 다시 문제가 되어 종로서에 끌려가 일주일간 취조받은 끝에 책이 판매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작가 39세 때의 일이다.

당시엔 군사독재 시절이라 그렇다지만 내 생각에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도 틈만 나면 세월호 유가족들을 폭도들로 매도하려는 종편과 신문들을 보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뒤늦게 <순이삼촌>이라는 중편소설 한 편 읽고 흥분해 제꺼덕 이런 글을 휴대폰으로 눌러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부끄럽다.

후에 이 작가의 제자가 어딘가에 썼던 글을 우연히 읽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았고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고문의 후유증이지 싶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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