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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0. 2021

이자람을 보라, 이 잘함을 보라

이자람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대전에서 보았다. 아내가 초연 때 몇 분 만에 티켓이 매진이 되었다며 울상을 지었던 공연은 부산 때 예매에 성공했으나 코로나 19 때문에 무산되었고 그 후로 소식이 없다가 이번에 대전예술의전당 스케줄이 잡혔던 걸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자람의 놀라운 점은 전통 판소리 국악인임과 동시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더라는 점이다. 밴드 리더로서의 이자람은 경쾌하고 즐겁다. 그가 쓴 노래의 가사들은 한결 같이 현대인들의 위선과 외로움을 간파한다. 천상병의 시들에 곡을 붙여 그 천진무구한 삶을 되살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판소리꾼으로 변신하는 순간 그렇게 교활하고 능청스러워질 수가 없다. 창작 판소리이기에 장단과 소리의 고저는 더 자유로워지고 사설엔 크로스오버적인 유머가 흐른다. 이번 노인과 바다에서도 산티아고 노인과 청새치의 대결을 다루면서 슬쩍 춘향가의 한 대목을 끼워 넣음으로써 지켜보던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상어에게 뜯긴 청새치를 묘사할 땐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아내는 공연이 끝나고 “너무 잘한다, 너무 좋다!”를 연발하다가 결국 6월 5~6일에 고양에서 하는 공연을 예매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노인과 바다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자람은 소리꾼임과 동시에 ‘소개꾼’이기도 하다.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브레히트를 소개하고 <이방인의 노래>로 마르께스의 숨겨진 작품까지 알려주더니 이번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우리와 연결해 주었다. 도대체 이자람에겐 한계도 없고 거침도 없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이자람이 가면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진다. 이번엔 지구 반대편쯤인 남미 아바나 바닷가에서 조선의 판소리가 구비구비 넘쳐흘렀다. 공연이 끝나고 조용해진 바닷가에서 나는 감탄한 파도가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이자람을 보라, 이 잘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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