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환이 형

책과 글쓰기, 인생 얘기로 충만했던 저녁

by 편성준

성준아, 내가 다음 주에 출국한다."

규환이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갑작스러운 아버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귀국했지만 코로나 19 방역수칙 때문에 장례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원 주차장에서 잠깐 얼굴만 봤던 규환이 형이었다. 바쁘고 골치 아픈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그래도 '성북동 소행성'에 살고 있는 후배를 꼭 만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마침 아내가 밖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라 식사대접은 못하지만 그래도 오시라고 했다. 수요일 금요일만 시간이 된다고 하는데 금요일엔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는 날이므로 수요일인 어제 당장 보자고 했던 것이다. 지금 못 보면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성준아, 나 왔다."

"형, 어디 계세요?"

"성북교회가 보이는데?"

"성북교회... 요? 다른 건 뭐가 보이세요?" 집 근처에 성북교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 교회를 이정표로 삼은 사람은 형이 처음이었다.

"세븐 일레븐, 으뜸부동산."

"으뜸부동산 앞에 계세요. 지금 나갈게요."

마침 급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들어온 아내와 함께 우리 동네로 온 규환이 형을 모시고 구포국수로 갔다. 두부김치와 지평막걸리를 시키고 나니 좀 마음이 놓였다.

아내도 규환이 형을 보고 싶어 했는데 일찍 들어오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형은 '성북동 소행성'이라 이름 붙인 우리 집으로 꼭 와보고 싶었고 내 책 얘기와 글쓰기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싶어서 왔노라 하셨다. 장례식부터 서울에 와서 해결해야 했던 여러 가지 일들 얘기를 형이 먼저 했다. 양양에 가서 현승이 형 만난 얘기를 했고(현승이 형은 지금 거기서 동네 이장님 같은 존재인데 워낙 인기가 있어서 나중에 국회의원에 출마해도 될 거라는 얘기를 하며 낄낄낄 웃었다. 현승이 형 죄송해요) 지금도 만나고 있는 뚜라미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나와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게 된 사연, 갑작스럽게 한옥을 수리해서 살게 된 이유 등을 얘기했다. 형은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물은 뒤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조금 더 뻗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라며 아쉬워했고 우리는 그래도 '듣보잡'인 내가 그 정도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또 부지런히 글을 써서 새 책을 내야 한다고 아내가 말했다.

형이 좋아하는 책이 『월든』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내가 소로우와 니어링을 헷갈리는 바람에 스콧 니어링의 아내 헬렌 니어링 얘기가 나왔고 그녀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크리슈나무르티까지 철학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비트겐슈타인 얘기에 아내가 눈을 반짝였고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헤르만 헤세와 버트런트 러셀의 사상 얘기까지 나왔다. 규환이 형은 고등학생 시절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만났던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에 얼마나 자신을 투영하며 열광했는지 얘기했다. 나는 저명한 학자나 사상가들끼리 젊었을 때 가깝게 지냈던 걸 나중에 알게 되면 신기하고 놀랍다며, 그 예로 지금은 완전 딴 길을 걷고 있지만 김민기와 김영세가 서울대 다닐 때 어쿠스틱 듀엣으로 활동했던 과거 얘기를 꺼냈더니 아내와 형은 그런 일이 있었냐며 놀랐다. 내친김에 맨날 밴드에서 기타만 치던 조니 뎁을 배우로 데뷔시킨 게 니콜라스 케이지의 애인이었던 조니 뎁의 전 여자 친구였다고 했더니 넌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냐며 형이 웃었다. 그렇게 해서 조니 뎁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나이트 메어』1편이라고 했더니 더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 얘기를 하며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니콜라스 케이지가 코플라 감독의 조카다)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헷갈리는 바람에 약간의 비난을 받이야 했다. 이야기는 홍상수 감독의 최근 영화 『도망친 여자』를 시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틴 스콜세지에게 존경을 표했던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 『기생충』으로 이어졌다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얘기까지 나왔다.

막걸리 두 통을 비우고 집으로 들어와 아내가 우린 차를 마셨다. 규환이 형은 한옥이 자그마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서 좋다고 감탄했다. 특히 예전에 벽지로 쓰인 일본 신문지를 버리지 않고 표구해서 걸어놓을 생각을 한 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길래 그건 아내의 아이디어였다고 정직하게 고백을 했다. 형은 선물로 작은 화분을 가져왔는데 거기엔 '행복에서 기쁨으로 - 규환이 兄'이라 쓰여 있었다. 예전에 TV광고 자막으로도 자주 보던 글씨라 반가웠다. 지금 백종열 감독의 글씨가 많이 나오듯이 한때는 규환이 형의 글씨가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차를 마시며 내 책에 저자 사인을 해서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막간을 이용해 고등학교 1학년인 형의 딸이 부른 노래를 휴대폰으로 들려주었는데 감각이 장난 아니었다. 피아노를 치며 부른 노래도 있었는데 듣는 이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고 리듬감도 탁월했다. 이런 감각은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환경 덕분일까 궁금했다. 아마 둘 다 골고루 영향이 있었겠지.

형은 내가 쓴 글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서 어느덧 좋아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 『창조적인 뇌의 비밀(Creative Brain)』 얘기를 하며 글쓰기의 효용에 대한 생각들을 말했더니 형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그동안 써놓은 글이 몇 박스나 된다고 말했다. 며칠 전 극장에 가서 봤던 독립영화 『파이터』 얘기도 했다. 거기서 '권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뭔가 다시 살아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했더니 형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읽은 책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규환이 형이 귀국해서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 이용찬 대표와 만나 나눴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박웅현 ECD와 만난 얘기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와 『여덟 단어』를 거쳐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까뮈의 소설들, 김화영 교수의 글들로 이어졌는데 결국은 지중해의 태양을 닮은 인생관 얘기로 귀착되었고 형이 우리 집에 선물로 가져온 화분에 쓰여있던 '행복에서 기쁨으로'라는 글이 그런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얘기를 나누다가 아내에게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가르친 조중걸 선생이 낸 책『러브 온톨로지(LOVE ONTOLOGY』(윤혜자가 기획자이기도 하다) 얘기를 했다. 그 책에 저자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마음만 받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고 했더니 규환이 형은 책상을 두들겨 가며 웃었다. 비트겐슈타인의『논리 철학 논고』에 등장하는 명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와 너무도 상통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좋은 글을 쓰게 해주는 요인 중 하나가 '절박함'이 아닐까 하는 얘기를 하다가 형이 50세에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연도 듣게 되었다. 그 얘기를 하다 보니 규환이 형이 수입이 좋은 미술학원을 마다하고 박봉의 비프로(프로덕션 이름)를 택했던 스물몇 살 때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 미술학원 선생을 하면 꽤 짭짤한 수입이 보장되었지만 나중에 홍대 앞에서 미술학원이나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니 너무 끔찍해서 광고회사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규환이 형은 사장님이 '내일 아침까지 콘티 하나만 그려보라'라고 하고 퇴근을 하면 밤을 새워서 늘 두 개, 세 개씩 그려 낸 끝에 국내 최연소 CF 감독이라는 영예를 거머쥘 수 있었더 것이다. 규환이 형은 밤을 새워서 콘티를 그리고 새벽에 충무로 사우나에 가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잠을 깨다가 코피를 흘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너무나 좋은 시절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밤은 짧았다. 우리 집이 얼마 전 EBS의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얘기를 하며 유튜브로 보여줬더니 자신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며 몇 분 동안 흥미롭게 시청을 했다. 규환이 형은 혹시 나중에 뉴욕으로 놀러 오면 거기 작은 '소행성'을 마련해 줄 테니 꼭 오라고 했고(센트럴파크가 살짝 보이는 아파트라고 했다) 아내는 기뻐하며 정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끝으로 마루 기둥에 있는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가라고 부탁했더니 형은 간단한 그림과 함께 '행복합니다. 김규환.'이라고 써주었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며 형은 새삼스럽게 내 나이와 근황을 물어보고는 당분간 경제적으로 대단히 힘들겠지만 그래도 기죽지 말고 잘 버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꾸준히 걸어가라 격려해 주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머리카락이 약간 하얘진 것 말고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규환이 형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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