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이다, 오버... 토요일 오전 성북동 소행성 풍경

토요일 성북동 김밥 브런치 번개

by 편성준

아내는 요즘 여덟 살 희수와 카톡을 하느라 분주하다. 심지어 요즘은 "일어낫다!"(아직 쌍시옷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라는 희수의 아침 카톡에 답을 보내느라 기상 시간을 앞당길 지경이다. 어제저녁 아내는 내게 토요일 아침에 판소리도 하고 도마도 생산·판매하는 은곡도마 이소영 대표의 아들인 희수와 브런치 약속이 잡혔음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김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으니 자신이 아침에 마트 가서 김밥 재료들을 사 오는 동안 당신은 '영아네김밥'에 가서 김밥을 두 줄만 사 오라는 것이었다. 희수네 식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배가 고플 수 있으니 김밥을 먹으며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김밥 모임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다른 집에서 만든 김밥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경험 상 매우 현실적인 제안이라 영아네김밥에서 김밥을 세 줄이나 샀다. 한 줄은 아내를 위해 소시지를 넣지 않은 걸로 샀다(얼마 전부터 육류와 가금류를 안 먹는 페스코 베지터리안 선언을 했다). 김밥을 사 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써 배가 고팠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밥을 꺼내 아귀아귀 먹었다. 나를 비난할 줄 알았던 아내도 음식 재료들을 준비하면서 소시지를 뺀 김밥 한 줄을 다 먹었다.

11시에 온다고 했다가 10시로 시간을 변경했던 희수와 그의 부모가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고 결국 10시 40분쯤 도착했다. 그렇다. 희수가 움직이면 부모들은 자동으로 달려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희수는 고양이 순자와 반갑게 인사를 시도했지만 어제부터 유난히 피곤해하며 눈에 눈곱을 붙이고 하품을 해대던 순자는 희수를 보고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마루 테이블 위에 그릇과 김밥 마는 도구들을 늘어놓고 김밥을 말았다. 주의력이 부족한 초등학교 1학년 희수도 억지춘향으로 꼬마김밥을 한 줄 말고는 순자에게로 가서 등 위에 장난감을 올려놓으며 장난을 쳤다. 의외로 순자는 반항을 안 하고 희수의 장난을 순순히 받아줬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김밥을 만들면서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다 말고 소영이 드립백 커피를 내리면서 말했다. 아, 배불러. 너무 먹었어. 아내가 오늘은 밥을 육인 분이나 했는데 다 먹었다며 웃었다. 김밥은 밥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배가 부른 게 당연했다. 희수네는 오늘 오후에 집으로 집안 어른들이 오신다며 급하게 일어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설거지할 게 산더미 같았지만 배가 너무 부르고 졸렸다. 아내와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낮잠을 잤다. 도중에 전화기가 울려 통화를 하느라 나는 깼지만 아내는 계속 잔다. 이럴 땐 조용히 해야 한다. 나는 마루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렸다. 내일 포항에 가서 할 북토크 PPT를 좀 손봐야 하지만 그보다는 오늘 아침 김밥 얘기를 먼저 쓰고 싶었다. 아내가 깰까 봐 자판도 살살 두드려야지 하다가 밖을 내다보니 빗소리가 커져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직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김밥을 많이 먹긴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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