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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9. 2021

책 좋아하는 사람들, 참 대책 없이 좋은 사람들

포항 지금책방 북토크 후기

책을 내고 가장 좋았던 건 독자들과 직접 만나 책 얘기, 살아가는 얘기 들을 실컷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계획했던 북토크가 여러 개 연기되고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다시 조심스럽게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계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3월 초 구미의 삼일문고에 이어 3월 28일 일요일에 포항 지금책방에 북토크를 하러 갔습니다.

KTX를 타고 포항역에 도착하니 김미연 대표님과 김현주 씨가 역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현주 씨는 이날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저보다 한 시간쯤 먼저 포항에 내려왔다고 하니 그 성의와 실행력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지금책방으로 갔습니다. 왜 이름이 지금책방이냐고 물었더니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책에서 '미루지 말고 지금 놀자'라는 주장한 제 의견과 똑같아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어떻게 책방을 낼 생각을 했느냐는 저의 질문에 '포항에도 괜찮은 책방이 한 군데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과감하게 창업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투 잡'을 뛰는 책방 사장님들 얘기를 이어서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점에 들어가 보니 이도우 작가 책들 위에 서강준 사진이 몇 장 붙어 있길래 어지간히 서강준을 좋아하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김현주 씨가 지금책방을 알게 된 것도 인스타그램으로 서강준을 검색하다 우연히 연결된 거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서강준 때문에 맺어져 온라인으로 책도 같이 읽고 필사도 하는 사이가 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서강준이 출연한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한지승 감독과 친구라고 했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거기 나온 임세미 배우와는 한동네 사는 이웃이라고 했더니 더 놀라더군요.

김미연 대표의 단골인 김밥집에서 김밥과 오뎅으로 요기를 하고 북토크 장소인 커피숍 '더착한커피'로 갔습니다. 여기는 책방 단골손님 중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북토크 장소 고민 얘기를 듣더니 흔쾌히 빌려주셨다고 했습니다. 강연장으로 들어가니 포항 분들도 있고 대구와 영천에서 오신 독자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책 제목이 부부가 놀고 있습니다,라고 설마 한 권 내내 노는 이야기만 하겠겠습니까."라는 말로 북토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논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얘길 했고 좀 바보처럼 살아도 큰일 안 난다는 얘기와 미루지 말고 지금 놀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할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는 말에 많은 공감을 표하셨고 월조회(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 얘기를 특히 재밌어하셨습니다. '성북도 소행성'이라는 집 이름의 의미와 '토요 워킹퀸'의 숨은 뜻을 알고는 박수까지 치며 즐거워하시더군요. '공처가의 캘리'도 몇 개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북토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간 것이라 생색을 내며 옥타비아 버틀러가 가르쳐 준 '글쓰기 규칙에 대한 충고'를 말씀드렸더니 다들 눈을 반짝이며 반색을 하셨습니다. 정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다들 제 책을 읽고 오신 분들이라 한 시간 남짓 제 얘기가 끝나고 이어진 질문 시간에도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책에 저자 사인을 해드리며 고맙다고 또 인사를 드렸습니다. 한 독자께서는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시면서 글쓰기 강의가 개설되면 꼭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암 치료를 받으시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제 책을 읽고 많은 용기아 위안을 얻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김미연 대표가 서점에 다시 가서 저자 사인을 좀 더 해달라고 해서 지금책방으로 다시 갔습니다. 서점에 오면 무조건 책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전부터 사고 싶었던 김혼비·박태하 커플의『전국축제자랑』을 샀고 김 대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인생은 지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포항제철이 보이는 바닷가 횟집으로 가는 길에 혹시 저녁값을 김 대표 혼자 다 부담하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 행사에 참석하려다가 못 오게 된 대구의 한 회원분께서 내주시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니. 술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말과 음악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악한 사람 없다는 말은 계속해서 믿지 않을 생각이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착하다는 말은 이제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선한 기운을 듬뿍 받은 저는 돌아오는 KTX 안에서 전화 통화를 시도하는 청년을 가볍게 설득해 밖으로 내보내는 신공을 발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쾌거였습니다. 졸려서 눈을 감고 있다가『전국축제자랑』을 한 챕터 읽었는데 벌써 글 읽는 재미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무슨 복에 이런 독자들을 만나나 생각하며 책을 집어넣는데 동화책 책갈피에서 쪽지가 하나 툭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김미연 대표가 저를 만나기 전에 쓴 감사 쪽지였습니다. 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대책 없이 좋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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