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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6. 2021

인생의 아이러니를 사랑하게 만드는 책

요조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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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인  요조가 글을 잘 쓴다는 건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나서 알았다. 특히 첫 부분부터 '떡정' 운운하다가(떡볶이집 이름이 '떡볶이 정류장'인데 떡 자와 정 자만 크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허세과에게 욕을 먹는 장면은 작곡 기타 노래  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팔방십방미인 요조라는 사람도 알고 보면 우리와 별다를 거 없다는, 예술가나 유명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버리려는 작가의 시도가 단박에 성공한 놀라운 글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왜 그 글이 그렇게 힘이 셌던가 궁금해져 다시 한번 책을 펼쳐 보았더니(사실은 전자책이라서 펼치지 않고 스위치를 눌렀지만) 떡정만큼이나 대단한 게 허세과의 부산 사투리였다.

"대체 누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노. 그 안에는 음란마귀밖에 없나. 뭐 욕구불만이가 요새." "얼마나 수시로 생각을 했으면 보자마자 아주 반사적으로 그래 되나. 대단하다 참말로."

앞으로 떡볶이에 대해 쏟아질 글들에 대한 선전포고용 아이디어(떡정)도 좋았지만 그 에피소드를 받쳐주는 후배 기타리스트의 이 사실적 대사들이야말로 나를 당장 요조와 허세과가 서 있던 그 홍대 앞 골목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아, 이 책은 떡볶이 얘기가 아니라 떡볶이를 소재로 요조라는 사람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선보이는 책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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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적중했고 이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패배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이라는 박연준의 시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어떡하면 인생에서 실패를 피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늘 그러고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인생엔 적당한 실패가 있는 것도 좋소.'라는 다소 빗나간 위로를 해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아이러니들을 제시한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정작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아이러니, 제주로 내려가 살면서 비로소 서울 구석구석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아이러니, 고기를 안 먹으면서 살아보기 위해 고기를 가끔 맛있게 먹는 아이러니... 이렇게 웃기고 슬픈 여러 역설들이 지금의 요조를 만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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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책 안에 아이러니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조는 남자 친구와 함께 서로의 자는 얼굴을 보며 놀리다가 연민을 느끼는데 이런 통찰은 자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네 엄마 자고 있는 거 가만 보고 있으면 그렇게 안돼 보인단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연민이라는 감정은  '사무치는 동질감'에서 오는 것이라 설명하는  김소연 시인의 책 『마음사전』을 읽고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요조의 남다른 감수성과  실천이다. 그는 시장에서 난생처음   시래기 껍질을 벗기다가 시래기처럼 물에 젖은 한지를 찢어서 작품을 만드는 민준기의 전시회를 찾아간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수는 있지만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전시회장으로 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책방에 자주 오는 어린 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다가 '나도 예전엔 저런 작은 몸속에 있었다' 사실을 닫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며 살고 싶다'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실제 그렇게 하는 아티스트 역시 흔히   있는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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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얼마 전 '페스코 베지터리언'을 선언했다. 육류와 가금류를 안 먹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바꾸고 지구 환경까지 생각하는 이 식생활은 이웃에 사는 베지터리언 임세미 씨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얼마 전 메디치미디어가 준비한 포럼 [환경의 역전]에서 초빙 강사로 무대에 선 요조 역시 그런 얘기를 하기에 더 반가웠다. 요조는 자신이 고기를 먹지 않거나 손님들에게 안 쓰는 천가방을 나눠주거나 당근마켓을 이용함으로써 새 제품을 사지 않는 등으로 하는 작은 실천들이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장 나와 아내처럼 그 의견에 찬동하고 실천하는(물론 나는 페스코 베지터리안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당장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 좀 어떤가. 어차피 우린 모두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는데. 이 책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망설임과 실패는 물론 삶의 도처에 매설되어 있는 아이러니들까지 사랑하게 해주는 책이다. 벌써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하니 어서 일독을 권한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옆에 서기' 챕터에 <어깨, 홍갑, 수진>이라는 글이 있는데 도대체 제목에 홍갑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월간『페이퍼』에 실릴 때도 같은 제목이었는데 정작 본문엔 홍갑과 관련된 대목이 없다. 나는 끝내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홍갑이 아티스트의 이름이라는 것만 알게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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