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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2. 2021

엉뚱한 재미를 본 소설

스티븐 킹의 『리바이벌』

가끔은 한밤중에 일어나 충동적으로 뭔가를 읽거나 쓰곤 한다. 오늘은 새벽   반쯤 눈이 떠지는 바람에 마루로 나와 도서관에서 빌린 스티븐 킹의 소설을 마저 읽었다. 『리바이벌』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소설인데(그냥 스티븐  소설이라니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주인공 제이미 모턴이 밴드에서 리듬기타를 치던 아티스트라서 대중음악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제이미가 기타에 엄청난 소질을 보인 세션맨은 아니라서 음악혼을 불사르는 장면보다는 마약을 하다가 겨우 살아난 경험  밴드의 곁가지 이야기가  많은데, 입담 좋고 뭐든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스티븐 킹이라 한때의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깨알 같은 지식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1983년은 그룹 토토(TOTO) 해였는데 '그들의 우라질「Africa」라는 노래는 정말 쓰레기 같은 곡이었지 않냐'라고 제이미가 투덜대는 대목이 너무 웃겼다( 대목을 읽는데 정말 제프 포카로, 스티브 포카로 형제와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 에릭  등의 이름이 주르르 스쳐 지나갔다). 곡이 후졌다기보다는 제이미의 질투심에서 나온 얘기이기 때문이다. 레코드 회사 사장인  예이츠가 '대중음악이 아무리 천박하다 해도 사람들은 결국 클래식 음악보다는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라는 유행가를 기억하게  '이라 자조적인 말을  뱉어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사실 뜻밖의 사고로 졸지에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을 잃은 제이컵스 목사가 충격적인 설교로 메인주의 주민들을 놀라게 하고 쫓겨난 뒤 자신이 발명한 전기 장치로 심령술사 노릇을 하는 일종의 공포소설이지만 막상 책을 읽다 보면 유머러스하고 짓궂은 문장들이 많아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흘러간다(제이미가 고교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만난 첫사랑 아스트리드와 첫 키스 후 콘돔이 찢어지거나 샐까 봐 섹스는 못하고 서로 손으로만 해주던 장면들도 너무 유치하고 재밌다). 이래서 잘 쓰는 작가의 소설은 뭘 읽어도 남는 게 있다.

어느덧 새벽이다. 차라리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면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애매한 시간에 깨면 뭘 끄적이다 만다는 게 흠이다. 고백을 하자면 지금도 노트에 뭔가 낙서를 하다가 끝을 못 보고 차선책으로 이 독후감 같지 않은 독후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은 운이 없었던 날인 것을. 날이 아주 밝기 전에 아내 옆으로 가서 눈을 좀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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