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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8. 2021

고전 읽기에 엔진을 달아주는 만화책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

 리뷰의 목적은 그걸 읽고 ",  속에 무슨 얘기가 들어 있는지 대충 알게 되었으니 이제 본문은  읽어도 되겠어." 아니라 "리뷰를 읽고 나니 정말  책이 궁금해졌어. 얼른 구해서 읽어봐야지." 최고인데 키두니스트가 쓰고 그린 '고전 리뷰툰' 바로 그걸 해내고 있는 듯하다.  책은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는 고전들의 다이제스트가 아니라(물론 줄거리도 조금씩 소개되기 하지만)  책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런 작품이 쓰였는지에 대한 사회 ·역사적 '맥락' 짚어준다.

그러니까 어린이 동화로 소비되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가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게 사실은 걸리버가 소인국, 거인국에 갔던 1, 2부 때문이 아니라 '천공의 성 라퓨타'나 '야후'라는 개념과 용어가 맨 처음 등장하는 3, 4부 덕분이었다는 사실,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유명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수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서사의 중요성을 거론할 땐 첫 손가락에 꼽힐 수밖에 없는 사실, 우리나라 문예출판사 판본의 『1984』는 빅 브러더를 '대형(大兄)'이라 초월번역하는 바람에 매우 중국스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의 문장력이 너무 출중해서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초라는 역사적 의미 말고도 충분히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 등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직접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물론이고 이미 읽었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이 안 나는 『팔묘촌』이나 『옥문도』 같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소설도 이 작가가 열어준 관점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것이다.


작가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단숨에 읽은 기억 덕분에 고전 읽기에 눈을 떴고 리뷰를 만화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어떻게 그릴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자신을 귀여운 소녀로 내세운 캐릭터가 의외로 인기를 얻는 바람에 독자들의 외면을 피할 수 있었다고(출간 전 인터넷 커뮤니티 누적 조회 수 80만 회 기록) 겸손을 떨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여학생처럼 보이는 맹랑한 소녀가 나와 고전을 쓴 작가와 농담 따먹기를 한다거나 익명의 독자와 4차원적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작품을 다루는 태도는 엄정하고 날카롭다. 아까 얘기한 작품들은 물론 뒤에 나오는 오 헨리나 에드거 앨런 포, 러브크래프트 등의 작품들을 다룰 때도 작품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도저희 쓸 수 없는 통찰들이 쏟아진다. 특히 조지 오웰의 『1984』를 얘기할 때 "이기적인 행동 기저에 철저한 계략과 논리, 그리고 철학이 있으면 대단히 매력적인 빌런이 됩니다."라고 쓴 부분은 소설가 차무진이 그의 책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에서 설파했던 빌런 컨셉의 정수 그대로여서 매우 놀라웠다.


이토록 텍스트 분석에 성실하고 관점도 분명하지만 개막장, 골 때림 같은 단어를 숨 쉬듯 사용하고 야하거나 난해한 작품 앞에서 당황해 머리를 긁는 모습,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으면서  "와 씨, 너무 좋아 죽을 것 같다."라고 애정을 과시하거나 '코로나 시국이라 전자책 삼' 이라고 작게 끄적여 놓은 메모를 보면 이 작가가 오덕 중에서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는 게 느껴져 어쩐지 마음이 좀 놓인다.

저자 키두니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와 에드거 앨런 포라고 밝히고 있으나 간다이치 고스케나 러브크래프트를 얘기할  보이는 장르적 지식과 관련 작품 추천 목록은 그야말로 무불통지다.  책은 평생 제대로 읽어본 고전이    되는 사람은 물론 이제 와서 새삼 고전 같은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외치는 성인들이 두루 읽으면 좋다. 고전 작품에 도전하기 전에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떤 취향으로 읽으면 좋은지 미리 가르쳐 주니까 실패 확률도 낮다(심지어 웬만하면 읽지 말아야  책까지 귀띔해준다). 페이지 수가 많고 글자가 크지 않은데도 손에  붙어 단숨에 읽히는  보면 편집도    있는  같고. 이래저래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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