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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14. 2021

'No!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이필재의『진보적 노인』나는 58년 개띠 '끝난 사람'이 아니다

이필재는 꽤나 꼴통이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죄송스럽지만 책을 읽다 보면 글 쓴 이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이필재는 좀 '또라이 과'인 것이다. 동창회 일을 하면서 만난 선배가 부당하게 무릎을 꿇으라 했을 때 그가 '되로 받은 그 모욕을 말로 갚았다'라고 기록한 것만 봐도 그렇다. 선배의 권위로 포장해 부당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건 옳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그 일로 인해 선배는 동창회 일에서 손을 떼었다고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 때 도서관에서 사람 없이 가방이나 책만 올려 자리를 잡아 놓는 학생들에게 엄중 항의한 것도 원칙주의자 이필재의 면모를 대변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적당히 비비고 사는 게 편하다는 걸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는 완고한 원칙주의자의 길을 택했고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적 노인'이 된 것이다.

이필재는 “젊어서 진보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란 말을 거론하며 '이 말에 의하면 나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진보가 되어야 하며 그 실천은 신자유주의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라는 구체적 좌표까지 제시하는 사람이다. 서른 살 때부터 기자였던 그는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는 비판 정신 때문에 편집장 자리에서도 곧 잘리고 계속 기사를 쓰는 위치를 고수했다("선배는 정무감각이 너무 없어요."). 정년퇴직 후에도 인터뷰 기사를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등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이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대단할 것 같은데 웬걸, 책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을 발견했다.


"사실 기자는 - 법률가가 그렇듯이 - 좋은 머리가 필수인 일이 아니다.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듯이 기자는 양심과 직업 정신에 따라 내 기사를 쓰면 된다. 기사에 진실을 담아내겠다는 직업적 결심과 정의롭게 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자기 검열을 하지 말아야 한다."


류승완의 영화 『부당거래』를 보면 류승범이 "이거, 머리 좋아서 검사 된 사람한테..."라고 뇌까리는 장면이 나온다. 검사 정도 되면 당연히 머리가 좋고, 또 머리가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필재는 기자라는 직업이 꼭 머리가 좋을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기자나 검사, 판사처럼 사회 지도층은 입신양명을 위한 머리보다는 타인들을 돕기 위한 양심과 직업 정신이 필요한 '기술직'일 뿐이라는 대쪽 같은 발언이다. 평생을 이렇게 꼬장꼬장 살아온 그이니 남은 삶을 '정치적 올바름'에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프링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좌파는 세상을 먼저 생각하고 다음에 국가,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필재는 이 말대로 살았던 사람으로 너무 당연하게 '바보 노무현'을 추억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그가 살면서 관계를 맺었던 정치·경제계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모두 실명으로 거론되어 나의 얄팍한 흥미를 돋운다. 촌지를 받지 않는 기자로 통했던 그의 이야기도 들어있고 그 와중에도 학벌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탈북자 차별자로서 무의식이 발동하는 자신에 대해 괴로워하는 솔직한 모습도 수시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렇기에 더욱 자신을 몰아세운다. 가깝게는 "50대 이상이 맞다고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라는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멀리는 여자 버스 차장의 뺨을 계속 때리던 취객의 머리를 감은 채 버스 계단에 주저앉음으로써 제압해 경찰에 넘긴 송웅순 변호사의 떳떳함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책을 읽는다. 출판 불황에도 97세에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15만 권이나 판매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의 말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살다 보면 기억력을 유지하게 된다."는 말에서도 배우고 자신이 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는 바람에 지금은 사이가 틀어진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최신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에서도 배운다. 그렇다고 답답한 모범생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마음적으로' '일적으로'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화악 깬다고 하고 '애정하다'는 본래 없는 말인데 네이버 오픈 사전에 올랐다고 화를 내면서도 아내와는 방종과 탕진이 키워드인 '방탕중년단'으로 살아보자고 외치며 낄낄댄다. 후배들에겐 "모든 아이디어는 등가”라고도 말한다. 경험 있는 선배가 냈다고 더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당연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서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대학  연극을  적이 있었다. 아마추어 연극 연습이었는데도 집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어느  들이닥친 학과장은 허가를 받지 않았으므로 연극 연습은 불법 집회라고 말했고 이필재는 연습을 중단했다.  일은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후회스러운 결정으로 남았다. 그때 "."라고 말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사건건 "No!" 외치는 사람이 되었고 이는 같은 진영에게도 에누리 없이 적용이 된다(나는  나라 진보 세력이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No! 외쳤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습관적 No! 외치는 노인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 '노인을 위한 나라 없다지만 'No!인은 위한 나라' 있는 것이다.  책은 몽스북 안지선 대표가 "진보적 노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라"라고 부추겨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부추기셨다고 오늘 안지선 대표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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