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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16. 2021

세상에서 가장 품위 있는 떠돌이 이야기 - 노매드랜드

『노매드 랜드』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 한수산의 『부초(浮草)』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은 가진  없는 떠돌이 써커스단원들이 보여주는 처연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계 국인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역시 자동차를 타고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록 안정된 직장도 집도 없지만 노매드들의 삶은 생각만큼 비참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다. 집이 없는 것이지 가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대사처럼 그들의 삶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항복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것 같지만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담담한 얼굴과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고 그 안에서 숙식도 해결하는 노매드들은 아마존과 같은 거대 유통회사나 프랜차이즈 식당 등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이들이 멋진 것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도 서로의 것을 나누며 연대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더먼드)이 야외 강연장에서 린다 메이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에게 얼른 의자를 가져다주는 남자의 작은 선의에서 나는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감독과 배우가 아닐 수 없다.

안정적인 삶으로 다시 들어오라는 호의를 거절한 채 새벽에 침실을 떠나 자신의 차로 돌아가 잠을 청한 뒤 길을 떠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모습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고도 품위가 넘친다. 영화음악도 너무 멋져서 나중에 찾아보니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이란다. 오랜만에 뿌듯한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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