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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0. 2021

우리는 60년 만에 지구를 아주 효과적으로 작살냈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씨스피라시(Seaspiracy)』리뷰

1990년대 중반, 마포에 있던 MBC애드컴이라는 광고대행사를 다닐 때 장염에 자주 걸리던 나는 회사 근처 내과에 다니느라 자연스럽게 약국도 회사 앞에 있는 곳으로 다녔는데 젊은 남성 약사는 약을 주면서  항상 "약 드시는 동안엔 밀가루 음식 절대로 드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다른 약국의 약사들도 똑같은 소리를 했던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은 주식으로 맨날 먹는다는 밀가루 음식을 왜 저리 정색하며 먹지 말라고 하는 걸까. 의문은 회사 자료실에서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을 읽다가 우연히 풀렸다. 밀가루 문제를 파헤친 기획기사를 읽게 되었던 것이다. 기자의 결론은 '지금의 밀가루와 옛날 밀가루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약사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밀가루는 하얗고, 밀전병의 원료이고... 밀가루가 다 밀가루지 뭐가 다르다는 거지? 지적 호기심과 끈기가 부족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장염이 낫자마자 회사 앞 환락빌딩(당시 술집이 층층마다 있었던 마포 제일빌딩의 별명) 지하 술집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장염엔 맥주가 안 좋다고 해서 주종을 소주로 바꾼 게 작은 변화라면 변화였다.


2021년,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도대체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걸까 생각하다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를 보게 되었다. 아내가 먼저 볼 때는 급하게 쓸 독후감이 있어서 못 보았고 어젯밤에 아내가 일찍 자길래 혼자 마루에서 노트북으로 보았다. 돌고래와 바다를 좋아했던 영국의 영화 제작자 알리 타브리지(Ali Tabrizi) 감독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멸종 위기가 된 고래를 취재하느라 일본 다이지라는 곳으로 잠입한다. 거기서 고래 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취재에는 관계자의 거부는 물론 경찰이나 당국의 방해까지 뒤따라서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새벽에 나가 몰래 찍기도 하고 억지로 인터뷰도 하면서 알리 감독은 이게 단지 고래 사냥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샤크 피닝(상어의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살아있는 상어의 몸통을 바다에 던지는 행위)을 당하고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가라앉는 상어를 지켜보는 일은 심란하다. 상어 지느러미는 샥스핀이라는 고급 중국 음식의 재료로 비싸게 팔린단다. 그딴 걸 굳이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음식을 먹는다는 건 맛 이전에 신분의 상징이라서 그렇단다. 그런데 문제는 고래나 돌고래, 상어의 죽음뿐이  아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상어가 멸종되면 그 밑에 있던 포식자들의 개체가 늘어 결국에 물고기들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알리 감독이나 환경운동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어가 바다에 있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어가 바다에 없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들은 돌고래를 좋아하지만 물고기를 먹는 게 돌고래를 죽인다는 건 꿈에도 모른다. 당연하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또는 배들이 의도치 않게 '부수어획(bycatch)'으로 그물에 걸리는 상어나 고래를 죽여서 버리는 걸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나. 문제는 '공장식'과 '기업화'에 있다. 예전처럼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청새치를 잡기 위해 72시간 사투하던 어업은 이제 없다. 대신 어업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며 대량으로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회사원 어부'들이 있을 뿐이다. 현대의 어업은 1분에 500만 마리의 물고기를 잡는다. 어떤 분야도 이런 지경까지 간 적은 없었다. 이러니 대기업에게 어장을 빼앗긴 소말리아 사람들은 총을 든 해적이 되는 것이다.

알리 감독은 많은 환경단체나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에 분개한다. 미세 플라스틱과 함께 바다 오염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플라스틱 빨대의 영향력은 실제로 0.0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다 오염의 주범은 누구인가. 바로 그물(fishing net) 쓰레기다. 고기잡이 어선들이 쓰고 버린 그물들은 고래부터 거북, 바다표범까지 가리지 않고 죽음의 행렬에 몰아넣는다.  그런데 왜 환경단체들은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을까. 돈 때문이다. 알리 감독은 '지속 가능한 어업이란 무엇이가?'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환경단체들의 사정이 궁금해서 쫓아가 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돈이 있었다고 말한다. 대기업들이 환경단체에 돈을 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이완용이나 전두환의 아들들이 밖에 나가서 아버지 욕을 삼가는 것과 똑같다. 결국 그들은 다 한통속인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생일이면 고깃국을 먹었던 건 그게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야만적이라 화들짝 놀라겠지만) 그 옛날 농촌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부모님께 끓여드렸던 것도 소고기가 주는 영양분을 섭취하기에는 값이 너무 비쌌고 또 소는 집안의 큰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이 퍼지면서 우리는 역사상 그 어떤 세대보다 고기를 많이 먹게 되었다. 이슬아 작가가 [날씨와 얼굴]이라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썼듯이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1960년대에 시작된 이후 기후위기를 가속화시켜 왔다. 그리고 우리의 식생활을 아주 천박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먹지 않아도 될 고기를 너무 많이 먹게 되었다.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 먹는 삼겹살만이 아니었다. 유제품도 육수도 다 고기였다. 그것도 자유롭게 목장을 뛰어놀던 동물이 아니라 좁디좁은 공장식 사육장에서 억지로 살을 찌워가며 스트레스만 받다가 죽은 고기들이다.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식탁 위에 놓인 갈비탕이나 치킨 앞에서 공장식 사육장의 비참함을 떠올리기엔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빈약하다.


바다는 이산화탄소의 주요한 흡수원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지구 상의 그 어떤 숲보다도 큰 일을 한다. 알리 감독은 고래사냥부터 바다를 바닥부터 깡그리 긁어대는 대규모 저층 트롤 어업, 샥스핀 재료인 상어 지느러미 획득, 그리고 오염된 양식장까지 이어지는 그 모든 '기업형 어업' 때문에 지금 바다가 큰 위험에 빠졌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해산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장 기업식 어업을 중단하고 육류나 물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그렇지 않다. 세상의 큰 변화는 언제나 비현실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여성인권이나 노예해방, 흑백차별도 그때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도 안 세우고 무슨 길을 찾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며 좋겠다. 아니,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오늘 저녁에 넷플릭스를 켜고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혹시 ' 영화는 돌고래를 사랑하던 감독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서 충격을 받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남획, 감시의 부재 등을 짚어나가다가 결국 어류를 밥상에서 내릴 것을 주장하는 과격한 다큐멘터리라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그냥 참고만 하시라. 다만 우리가 고작 60 만에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지구를 아주 효과적으로 작살냈다는 사실만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6 , 6  동안에도 멀쩡하던 지구의 자연을 겨우 60 만에 작살냈다. '작살냈다'라는 비속어에는 공교롭게도 고래를 잡을  쓰던 사냥 도구가 들어있다.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자. 칼로 흥한  칼로 흥하고, 작살로 웃은 자들 작살나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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