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설거지에 임하는 남편의 자세

by 편성준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해야

열혈남아입니다


내가 '방배살롱'에 북토크를 하러 갔던 토요일에 예고은삼베 박자야 선생을 뵈러 마르쉐에 갔던 아내는 10년 전쯤 '여자연구소'라는 곳에서 만났다는 후배 한나 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요즘 목포에 살고 있다는 한나 씨는 오랜만에 서울에 온 김에 친구 집에서 자려던 계획을 바꿔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잤다. 평소엔 술을 잘 못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따라준 화요를 물도 타지 않고 달게 마셨다. 일요일 아침에 손님방에서 눈을 뜬 그녀는 아내가 차려준 밥과 반찬에 감탄을 거듭했다. 요즘 거의 모든 끼니를 음식점에서 사 먹는다는 그녀는 밥을 먹으며 마치 고급 음식점에 온 것 같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밥과 국을 더 가져다 먹었더니 그녀도 나를 따라서 솥에 남은 밥과 국을 더 퍼다 먹었다. 다들 과식을 했다. 밥을 다 먹고 아내는 잠깐 누워야겠다며 안방으로 갔고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한나 씨는 설거지를 하는 나를 보고 "어젯밤에도 설거지하느라 힘드셨죠? 파스텔톤이 잘 어울리시네요."라며 설거지하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해야 열혈남아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작게 얘기해서 한나 씨는 못 들은 것 같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삼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