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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8. 2021

거의 모든 책은 제값을 한다

박연준 산문집『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고 느낀 점

모든 책이 좋은 책일 수는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책은

좋은 책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어떤 책은 저자가 별로고

목차나 문장도 별로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으로도

어떤 통찰을 선물할 때가 있다.


책은 좋은 친구다.

정독하지 않아도 완독 하지 않아도

화내거나 섭섭해하지 않고

그대로 책장에 서서 나를 기다려준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하나는 있다고 했다.

나는 한 권의 책에서

한 줄의 통찰이나 아이디어,

또는 에피소드 하나를 얻어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책은 제값을 한다.


물론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겐 그게 책일 때가 많고  

그래서 넷플릭스를 보다가도

괜히 마음이 바빠져서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좀 더 읽지,

하고 다시 책 앞에 가서 앉는 것뿐이다.


* 글은  개월  박연준 시인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다가 메모해  것이다. 나는  책에서 박연준 시인이 신인문학상 시상식  만났던 문단의 어른에게서 '혼자서만' 자기에게 오라고 했던 명령을 거절하는 바람에 쌍욕으로 점철된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를 비롯해 온갖 고초를 겪고 잠시 귀가  들리는 쇼크 상태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편견으로 가득  '일부' 남자 시인들  몇이  시인의 데뷔작 「얼음을 주세요」를  두고 주절거렸던 것처럼 김언희, 김민정 시인 같은 '여성시'  아름답지 않고 문란하다고, "이게 시냐" 비난을 해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지저분한 사실만 알게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은 소설을  ' (어내)' 사람이 아닐까,  시작하는 「모든 소설은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다」라는 글에서는 


"사는 것도 어려운데 왜 가짜 삶(소설)을 겪어보겠다고 이 정성을 들이느냐고? 소설을 읽는 것은 다른 장르의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책이 사는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면, 소설은 한 편에 한 번씩 삶을 '살게' 한다.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든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같은 소설에 대한 멋진 통찰까지 함께 얻게 되었다. 이게 모두 한 권의 책에서 얻은 것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오늘 아침에 다시 마루애 있는 책꽂이에 가서 꺼내보니 이 산문집도 엄유정 작가의 일러스트로 표지를 만들었다. 나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와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박연준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두 엄유정 작가가 일러스트를 맡았다. 엄유정 작가는 자신이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원고에만 그림을 그려준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박연준, 장기하, 편성준을 함께 묶어주는 이 사소한 공통점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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