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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7. 2020

불가능은 없다, 그래서 슬프다

넷플릭스 다큐 [민주주의의 위기 - 룰라에서 탄핵까지]

퇴임 당시 지지율이 87%.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에 대한 나의 첫 이미지는 이것이었다. 도대체 정치를 얼마나 잘했길래 퇴임하면서 국민들에게 저런 지지를 받아? 그러나 곧 들려온 소식은 허무했다. 룰라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법정구속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허무하군. 역시 정치가들이란. 국제뉴스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멀리 브라질의 정치 소식까지 챙기기엔 내 일상이 너무 바쁘고 드라마틱했고, 우리나라 정치뉴스를 보고 화를 내거나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에 보면 좋을 영화'로 아내와 친분이 있는 이명세 감독님이 [민주주의의 위기 - 룰라에서 탄핵까지]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정말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하급 노동자 출신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수감되기 직전의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브라질 경제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개혁가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었지만 결국 부패 혐의로 구속되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가 겨우 아파트 한 채를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유죄 추정의 근거로 법정에서 나온 검사의 말 "아파트의 소유자가 룰라라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진짜 소유관계를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이다. 이건 증거가 없다는 게 바로 증거다!라는 괘변인데 놀랍게도 이 논리에 맞춰 '뇌물 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9년 6개월의 형량을 선고받은 것이다. 룰라는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래도 결국 감옥에 가야 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감옥에 가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그러니까.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한 재판에서도 형량이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반성의 기미가 없고 모든 혐의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한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을 비난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는 판결문 내용으로 볼 때 피고가 재판부를 화나게 하는 바람에 더 중형이 선고된 것 같다,라고 친절하게 해석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브라질의 불운은 룰라의 구속으로 그치지 않았다. 룰라의 정치적 후계자이자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는 젊은 시절 구속과 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이었는데 룰라를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반 부패 수사, 일명 '세차 작전'이 진행되면서 결국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를 박탈당한다. 그의 혐의 역시 엄청난 부패가 아니라 회계 기록을 잘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은 어떻게 되었냐. 민주정권을 몰아낸 검사들과 한패였던 극우 인사 보우소나르가 현재의 대통령이다. 그는 군부독재 시절을 찬양하고 "고문은 효과는 즉각적이다."라는 막말을 일삼는 사람이다. 동성애자를 비난하고 흑인과 여성을 사람으로 연기지 않는 듯한 발언도 자주 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엔 국민들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소리쳐서 감염을 더 확산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간단히 말하면 이 모든 게 브라질 검찰과 언론과 기업가들의 합작 선동에 국민들이 한때 열렬히 분노한 결과다.

믿기지 않는다고? 이게 픽션이라면 너무 작위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라고 화를 내거나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소설이 아니라 진짜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그것도 불과 얼마 전에(2020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나는 '착한 사람은 결국 이기지 않을까?' '배운 사람들은 우리보다 똑똑하니까 정의를 구현하는 데도 유능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이 영화를 적극 권한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검찰과 언론과 재벌이 손잡고 족치면 위선자의 탈을 쓰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그래서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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