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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8. 2020

순자라고 불린 이들은 과연 순한 삶을 살았을까?

황정은의 [연년세세]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순자다. 아내는 평범한 고양이니까 그냥 순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지만 사실은 돌아가신 장모님 이름을 딴 것도 부인할 순 없는 사실이다.  이름엔 그걸 짓는 사람의 바람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순자라는 이름을 받은 사람들은 다 순한 인생을 살았을까?


[연년세세]는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된 연작 소설이다. 소설가 황정은은 순한 아이로 살기를 요구받고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어떤 삶일까 궁금해서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두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하긴 누군가의 일생이라는 게 “자, 얘기해 보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청산유수로 펼쳐질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사람은 무언가를 세상에 남길 수 있고, 남기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단 몇 시간의 서사로 요약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황정은은 어렵게  6.25를 거치고 인색한 외할아버지와 살다가 다시 각박하고 야멸찼던 고모에게로 가 자랐던 이순일이라는 인물을 상상했다. 그리고 '동명이자 동갑이었던 친구' 순자와 미국으로 가서 살게 된 안나를 상상했고, 이순일의 자식들인 한영진과 한세진, 한만수의 삶을, 또 한세진의 여자 친구인 하미영의 삶과 멀리 뉴욕에 있는 노먼 카일리와 그의 딸 제이미 카일리의 삶으로까지 상상력을 뻗친다. 그는 어떤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소설이 된다고 했다. 이 연작 소설은 한동안 가족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이름들로 문장을 이어가며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쓰는데 세 번째 소설 <무명(無名)>은 180매까지 썼던 것을 다 지우기도 하면서 6개월 정도 걸려 썼다고 한다. 그만큼 고민이 깊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네 번째 단편 <다가오는 것들>에서 뉴욕으로 간 한세진은 비로소 깨닫는다. 안나는 안나의 삶을 살았어, 여기서. 그래. 그들은 거기서 그들의 삶을 살았듯이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삶을 살면 되는 거야. 그래서 이 소설은 주인공 이순일뿐 아니라 그의 남편 한중언이나 딸 한영진, 한세진, 하다 못해 딱 한 장면 등장하는 노먼 카일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사람 허투루 다뤄지지 않고 모두 다 순한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결국 황정은은 이순일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잘 사는 게 뭔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 존재론적 질문의 가치는 정확히 읽는 사람들의 가슴에 가서 꽂힌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황정은의 소설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로 또 꼽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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