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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03. 2021

'투 머치 토크'했던 진주문고 북토크 여행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북토크 후기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는 흥분해 있었다. 원래 북토크 사회자는 이병진 팀장이었지만 하루 전 내 책을 읽은 여 표가 이번 행사는 직접 사회를 보겠다고 나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책이 제목과는 달리 놀기만 하는 얘기가 아니고 날아갈 듯 가볍지만 뭔가 여운까지 남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데 그걸 해냈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팬심을 드러냈다. 고마운 일이었다. 북토크는 즐거운 분위기로 끝났고 내 책을 읽지 않은 채 행사에 참여했던 분이 책을 네 권이나 들고 와서 싸인을 받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팀장은 수업이 끝나고 서점에 들렀다가 북토크장으로 들어와 작가에게 질문을 했던 남자 고등학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이 팀장과 맥주를 마시고 잔 다음날 다시 서점으로 갔더니 여 대표가 점심을 사주며 물었다. 부부가 둘 다 논다고 제목에도 썼으니 그리 바쁘진 않을 테고, 괜찮으면 자신과 하동이나 구례로 가서 좀 놀다가 다음날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만 허락하면 괜찮다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틀째 외박을 허락받았다.


하동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늦은 나이에 문학수업을 하고 최근 『바람이 수를 놓은 마당에 시를 걸었다』라는 멋진 산문집을  공상균 작가가 살고 있었다. 여태훈 대표는 그가 운영하는 '토담농가'라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작가를 소개해 주었고  책을 그에게 선물할  있는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나도  작가의 싸인이  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토요워킹퀸' '비백' '독하다 토요일'  북토크에서 내가 얘기했던 네이밍들을 좋아했던 이병진 팀장이  작가도 네이밍의 귀재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정말로 그랬다. 자신이 있는 곳을 '이야기를 파는 점빵'이라고 규정한 것도 좋았지만 같은 지역에 사는 분이 만든 건강보조식품에 '100번째 봄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봄날을  번이나 맞을 정도로 오래 산다는 뜻이니 건강식 네이밍으로는 최고인 것이다. 물론 어머니가 시장에 내다   '지리산 바람 맞고 섬진강 달빛 머근 하동 만지배’라는 카피를 써줬다는 여태훈 대표도 서점 운영 35년에 빛나는 공력의 소유자이었기에 그런 글이 가능했을 것이다.  대표는 "책방에서 책만 파는  가장 하수예요."라고 말하며 진주에서 하동까지 아우를  있는 사람들과 문화공간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놓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도인들을 만나 약간 지친 나는  작가가 내려주는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먼저 숙소로 가서 샤워를 하고 잤다. 미리 군불을 넣었다는 숙소는 방바닥이 절절 끓었다. 다음날 아침  작가는  책을 벌써 반쯤 읽었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며 웃었다. 밤에 공연히 이병진 팀장을 헐뜯는 글을 쓰느라  작가의 책을 조금밖에 읽지 못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붉히며 그저 고맙다고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실란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 곡성으로 갔다. 농부이자 과학자인 이동현 대표가 운영하는 미실란의 '밥카페 반하다'에 들어서니 왼쪽에 김탁환 작가의 집필실이 보였다. 버려졌던 폐교였던 이곳은 이동현 남근숙 부부의 노력에 의해 밥카페와 농업기술회사로 변했고 김탁환 작가의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에 힘입어 이제는 곡성의 핫플레이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실란에서 생산하는 쌀과 농산물로 이루어진 밥을 주문해 먹었다. 요즘은 집에서도 미실란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어서 그런지 식당에서 먹는데도 아내가 해준 집밥 같이 느껴졌다. 우리가 식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쯤 갑자기 이동현 대표와 김탁환 작가가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다. 이동현 대표는 진주문고 내려오는 날 새벽에 유튜브를 통해 봤기에(서점 분위기도 익히고 예습도 할 요량으로 그가 출연했던 진주문고 북토크 동영상을 찾아봤다) 어제 본 사이 같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김탁환 작가는 너무나 반가웠다. 김 작가도 나를 보더니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내 등을 두드리며 반가워했다. 여태훈 대표가 "김탁환 작가님은 이제 근두운 타고 다니시게 생겼네!"라며 인사를 했다. 비건이 된 뒤로 얼굴빛이 밝아지고 살도 빠진 김 작가가 너무 좋아 보여서 한 말이었다.


밥을 다 먹은 네 사람이 식당 옆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남근숙 이사가 왔다. 이동현·김탁환 콤비가 집필실에서 줌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는 동안 남 이사는 다른 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유튜브를 통해 남 이사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걸 보았다고 인사를 했더니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독서클럽에서 얼마 전 내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었는데 맨날 어려운 책만 읽다가 술술 읽히는 책을 읽어서 회원들이 다들 좋아했다고 말해주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탁환 작가와 함께 집필실로 갔다. 김 작가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달문의 마음'이라 쓴 현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달문의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읽혔다. 작업실은 넓고 햇빛도 잘 드는 멋진 공간이었다. 이 곳에서 또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김 작가의 최신작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를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곡성은 얼마 전까지는 영화 제목으로 말고는 알려진 게 없었는데 다행히  문화적 소양이 높은 군청 공무원들이 많은 덕분에 미실란도 힘을 얻고 김탁환 작가의 레지던스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여 대표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이 35년 간 서점을 운영한 이유는 책을 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며 자신이 꿈꾸는 공간이 완성되면 작가들을 초빙해 거기 머물며 글을 쓰게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도 나중에 아내와 함께 내려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파격적인 제안을 듣고도 "일단 아내가 허락을 해야......"라는 바보 같은 대답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 작가의 책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가 곡성 공무원들의 필독서로 선정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국민일보의 김남중 기자가 김 작가를 인터뷰하러 오는 바람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 대표는 KTX 역으로 가는 길에 '푸른 낙타'라는 곳에 들러 서예와 전각을 하는 안태중 작가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이박삼일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 대표와는 토담농가와 미실란만 간 게 아니었다. 고종 황제가 마신 커피를 재현했다는 '양탕국 커피집'에도 갔고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악양의 행글라이더장에도 갔다. 그리고 여 대표의 고향인 하동의 집에 가서 그의 여동생이 키우는 개 '루팡이'도 만났다. 함께 다니는 차 안에서는 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나는 '논객으로 살지 않는 태도'에 대해 얘기했다. 현실의 이슈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면 감각은 날카로워질지 모르지만 내면은 점점 고갈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여 대표는 '책이나 사람이라는 점들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그게 면이 되고 입체가 되어 문화를 만든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만나 금방 친구가 된 우리들의 신기한 인연에 대해서도 기뻐했다. 북토크를 하러 와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가게 되었지만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병진 팀장이 내게 추천했던 한강의 단편소설 「작별」을 읽다가 전율했다. 이 팀장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단지 읽고 쓰는 행위만으로 이렇게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다. 저녁에 동네 밥집 '낙지 낚이다'에 가서 낙지볶음에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자랑삼아 마구 했더니 아내는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네."라고 말하며 껄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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