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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6. 2021

뒤트렁크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과 스무 살 시절이 만나는 지점

남자애 여섯 명이 죽어라 어울려 다니던 대학 신입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강의실이나 도서실은 물론 당구장, 나이트클럽, 심지어 소개팅 장소에도 함께 나갔는데 어쩌다 보니 자동차를 구입하게 된 친구가 하나 생겼다. 당시로는 드문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그 차를 타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강원도로 정했다. 문제는 인원이었다. 여섯 명이 한 차에 탈 수 없으니 한 명은 빠지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좌석이 모자란다고 누구 하나가 빠지는 건 옳지 않아. 그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트렁크에 타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출발지에 모여 가위바위보를 했다. 언제나 운이 없는 석천이가 걸렸다. 석천이는 뒤트렁크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괜찮아. 난 잘 거야." 아이들은 여행을 떠났다. 스무 살의 청춘답게 그들은 차 안에서 하염없이 떠들고 욕하고 자고 담배를 피우면서 갔다. 한참을 달리다가 한계령쯤에서 누군가 석천이를 기억해냈다. "야, 좀 미안하지 않냐?"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석천이를 꺼내 주기로 했다.  트렁크를 열였더니 석천이는 웃고 있었다. "아함, 잘 잤다." 석천이가 나와 기지개를 켰다. 모두들 석천이를 따라 기지개를 켰고 휴게소에서 파는 음료수를 사서 마시기도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다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트렁크에 누굴 태우지?"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자."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번에도 언제나 운이 없는 석천이가 걸렸다. 아이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석천이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잘 거야." 석천이가 다시 트렁크로 들어가 누웠고 아이들은 크렁크 문을 닫았다. 차는 구불구불한 대관령 길을 따라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석천이는 트렁크 안이 어머니의 자궁 같다고 생각했다. 인생 자체가 가위바위보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257페이지에 "다 타기엔 공간이 충분해. 트렁크에 탈 일은 없어."라는 조시 어머니의 농담을 읽다가 대학 동아리 뚜라미 1년 후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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