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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2. 2021

전 세계가 공감한 서글픈 현대인의 초상

연극  『완벽한 타인』 리뷰

세종문화회관에서 연극 『완벽한 타인』을 봤다. 아내가 어렵게 표를 구했다고 자랑을 했던 작품이다. '친구들끼리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걸려오는 전화나 이메일, 카톡, 문자메시지 내용을 빠짐없이 공개한다'는 설정은 전에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다 그렇듯이 연극으로 각색된 걸 다시 보면 그 맛이 달라진다. 일단 욕도 많이 나오고 대사들의 '강도'가 더 세졌다. 생동감 있는 배우들의 합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있다.


우리가 숨기고 싶은 것을 들춰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섹스가 들어있다. 그러나 정작 섹스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극소수다. 대신 섹스로 인해 생겨나는 외도와 거짓말, 비밀 채팅, 배신, 성 정체성의 문제까지(까를로타의 '가슴 수술'도 따지고 보면 성과 관련이 있다) 모두 스마트폰 속에 숨어 있다가 동시패션으로 커밍아웃을 한다. 이 작품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잖은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누구나 혼자 있으면 이상한 짓을 한다'라는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을 그리기에 더욱 착잡하다. 그래서 작가는 마지막엔 '사실은 이 진실 게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눙을 치며 비겁한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억지 봉합 덕분에 이태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여러 번 각색되며 전 세계인의 공감을 샀던 것이지도 모른다.   


배우들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일렬로 늘어선 식탁과 그 옆의 주방, 그리고 개기월식을 관찰하기 위한 망원경까지 한 자리에 놓여 있어 무대를 떠나는 배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어제 상연에서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특히 임세미와 이시언의 연기가 뛰어났다. 임세미는 러블리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의 비앙카 역을 잘 소화해냈고 이시언은 다정다감하면서도 다혈질인 코지모의 이중성을 잘 살려냈다. 극장을 나서며 아내와 나는 임세미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고 합의를 보았다. 그녀가 우리 동네 사는 배우라서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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