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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19. 2021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2 』를 봐야 하는 이유

실수가 잦은 편이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건망증도  심한 편이라 뭔가를 흘리거나  놓치는 스타일이다. '살아오는 동안 있었던 실수담만으로도   권이 나올 태세'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정말  책에서 실수담으로  챕터를 채우고 말았다. 혹시 실수담을 만드는 재미에 일부러 그러는  아닐까 의심하는 친구도 있었고 책을 읽은 독자 중에 '실수도 정도껏이지, 이해가  .'라고 팟캐스트에서   얘기를 하는 방송도 들었다. 그러나 맹세코 일부러 실수를  적은   번도 없다.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난 것뿐이데... 하는 마음으로 약간 억울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2>를 보았다. 시즌2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이가 죽었는데도 자꾸 소아외과로 찾아오는 '연우 어머니' 얘기가 나왔다. 어떤 땐 그냥 지나가다 들렀다고도 하고 뭔가 먹을 걸 싸들고 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좀 이상하거나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걱정을 하는데 장겨울 선생만은 달랐다. 연우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온 연우 어머니에게 장겨울은 시간 있으시면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한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제가 많이 무뚝뚝하고 말주변도 없고, 위로의 말도 잘 못하고... 그래도 연우 얘기하고 싶거나 연우 생각나면 언제든지 저한테 오세요. 연우에 대해선 제가 연우 어머니만큼 많이 알잖아요. 어디 가도 저만한 말 상대 못 찾으실 거예요."

연우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기 오면 사람들이 자길 연우 엄마라고 불러서 너무 좋다고. 연우는 이미 죽었지만 연우를 쉽게 잊어버리기는 싫다고. 우는 연우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눈물을 흘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다른 드라마와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뭔가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도 무조건 배격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하고 공감하는 측은지심의 태도.


생각해 보면 '슬의생'에서 좋았던 장면들엔 모두 그런 마음이 있었다. 바람피운 남편이 미워 식사와 투약을 모두 거부하는 환자에게 익준이 자신이 이혼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는 장면도 그랬고 까탈스러운 성격의 석형 어머니가 김갑수 김해숙 등과 마피아 게임을 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 석형에게 "오늘이 내 평생 제일 즐거웠던 날이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도 그랬다. 사람들은 다 조금씩 모자라거나 이상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사람을 비난하거나 고치려 드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여 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고, 이런 의사들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춥고 지친 마음에 손난로 같은 따뜻함을 전해주는 이 드라마가 좋다. 우리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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