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일수록 쉽게 생각해야 답이 나온다
군대에 있을 때 선임에게 들은 얘기인데 지금 생각하면 좀 섬뜩하다. 내가 일병일 때 상병인 선임에겐 지적이고 나른한 인상을 가진 대학생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잘 웃고 찰랑찰랑 단발머리가 인상적이라 운동권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당연히 남자 친구도 있었다. 누나는 자기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회장이면서 키가 크고 친절했던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믿었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만다. 이후로 그녀는 딴 사람이 되었다. 남자와 헤어진 것은 물론 학생운동에서도 발을 빼고 안양에 있는 자신의 집 방에서만 칩거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남동생에게 누나가 물었다. "현성아, 누구 내 방에 들어왔었어?" "무슨 소리야. 누나 나간 적도 없잖아. 누가 들어가?" "근데 베개 위에 여자 머리카락이 묻어 있어. 긴 게." 동생은 누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단발머리였다. "그 여자 머리가 길었는데......" 누나가 말했다. 남자 친구와 잤던 여자를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동생은 화를 내며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누나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육 개월 후 선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하더니 남편 따라 외국으로 가서 잘 살았다고 한다. "머리카락은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선임에게 물었다. "그 후에도 긴 머리카락이 계속 나오긴 했지." 선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도 괜찮았어요, 누나는?" "괜찮았을 리가 있나. 그런데 견디다 못한 누나가 수를 내 거야." 도대체 어떤 수를 낸 걸까. 나는 궁금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긴 머리카락이 계속 나오는 거라. 그래서 할 수 없이 누나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대. 베개에 묻어 나오는 머리카락보다 더 길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답은 때로는 아주 가까운 곳에, 또는 엉뚱한 곳에 있다는 걸 생각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군대 선임이 들려준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근데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나이는 그때 나보다 두 살 어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