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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9. 2021

마스크 안의 미소가 빛났던 글쓰기 강연 뒤풀이

참여연대에서 6주간 '잘 읽히는 글쓰기'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아내가 낮에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대답했다가 몇 분 후에 정정했다. “여보, 나 먹고 싶은 거 생각났어. 밤에 강연 마치고 돌아와서 납작만두를 먹고 싶어. 술은 내가 사 올게." 마침 냉장고 냉동실에 납작만두가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우리가 가져 간 선물의 답례품으로 '파란대문집'에 머물고 있는 손님이 내준 냉동식품이었다. 나는 아내가 간식으로 말아준 국수를 먹고 서촌에 있는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로 갔다. 어제는 내가 강사를 맡고 있는 참여연대 <잘 읽히는 글쓰기> 강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만나서  '유머와 위트 있는 글쓰기'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쓰기' '매력적인 자기소개서 쓰기' '기억에 남는 리뷰 쓰기' '내 문제를 해결하는 글쓰기' 등등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어느덧 6주가 쏜살 같이 지나가 버렸다.


20대 청년부터 60대가 넘은 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오셨는데 직장에 다니거나 자기 일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평일 저녁 7시에 글쓰기 교실에 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체 카톡방엔 매주 수업을 오지 못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문자들이 빠지지 않았고 그런 문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다들 어떤 경위를 통해 수업에 오게 된 건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서 온 분들이니 그 열의가 대단했고 각자 살아온 이력이 다르다 보니 과제로 제출하는 글의 내용과 스타일도 다 제각각으로 흥미로웠다.

 

어제는 마지막이라 특별히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고 가서 강의를 했다. 늘 그랬듯이 한 시간 정도는 수강생들이 써 온 글들을 소리 내서 읽게 하고(글이 끝나기 전에 멈추게 하고 뒷부분은 늘 내가 읽어드렸다. 자신이 쓴 글을 남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경험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하나하나 리뷰를 해주었다. 어제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글로 써봄으로써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는 자리였는데 예상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가장 많았고, 자신의 문제를 거론하기 싫어서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써온 분도 있었다. 나는 기뻤다. 강연을 시작할 때보다 수강생들의 글이 훨씬 친절하고 자유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만의 개성이 담뿍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어떤 분은 투덜이처럼 글을 쓰지만 결국 따뜻한 마음을 드러냈고 또 다른 분은 처음 쓰는 글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질서가 정연한 글을 가져오기도 했다. 비록 문장이나 구성은 좀 미숙하더라도 이야기의 방향성들이 모두 선명해서 좋았다.


리뷰가 끝나고 한 시간 동안 반드시 메모를 해라, 인생이 들어 있는 글을 써라, '영혼을 갈아 넣는다' 같이 반짝 유행하는 표현은 삼가라, 긴 글을 부르는 한 줄을 먼저 찾아라 등등 평소 글쓰기에서 부탁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내 이야기를 듣는 교육생들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9시부터 30분 간은 책상 위치를 바꾸어 동그랗게 앉아 질의응답과 그동안 느꼈던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나이가 많은 교육생 한 분은 글쓰기를 평생 처음 해보는데 자신과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최근 배우기 시작한 춤과 비슷하다고 했다. '열려 있는' 수업 분위기도 좋았다고 했다. 어떤 분은 내 수업에서 글쓰기 논리나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전에 어떤 소설가에게 수업을 받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사뭇 차원이 다르더라는 것이었다. 카피라이터 출신이라 그런지 아이디어와 형식 면에서 늘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강조하는 게 좋았다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내 책은 물론 브런치 글도 늘 읽는다면서 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강연 제목을 잘 읽히는 글쓰기 대신 '남다른 글쓰기'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술은 물론 음료수 한 잔 마시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마스크 안에서 빛나던 미소까지 숨길 수는 없었던 흐뭇한 뒤풀이였다. 9시 40분이 되어 아쉬운 자리를 마감하고 교육생들, 최인숙 간사 등과 작별을 고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단체 카톡방으로도 고마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인연들을 만난 것이었다.


진로 빨간 뚜껑 두 병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슈퍼밴드2>를 보고 있다가 냉장고에서 납작만두를 꺼내 물에 삼고 기름에 튀기기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만두는 소주 안주로 일품이었다. 우리는 TV를 보며 술을 마셨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술 분야를 오디션으로 평가해서 순위를 정하는 게 마음에 안 들고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 오디션 프로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막상 TV를 틀어 프로그램과 접하면 새로운 뮤지션들의 놀라운 재능과 풋풋함에 늘 굴복하게 된다. "우리가 공모전에서 뽑히거나 등단을 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요."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순수한 글쓰기의 즐거움에만 집중했던 글쓰기 수업이 새삼 소중하고 고마웠다. 소주 두 병을 모두 비우고 설거지를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만두를 먹어서 그런지 방귀 냄새가 지독해졌다고 아침에 아내에게 욕을 먹었다. 후기에 이런 것까지 쓰면 아내에게 또 욕을 먹겠지만 그래도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글이 최고다, 라는 평소의 지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글을 마치련다. 저와 함께 6주간 글쓰기 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반가웠고 즐거웠습니다. 내내 그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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