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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9. 2021

우리에게 성폭력은 너무 흔한 일이에요 :

강화길의 『다른 사람』

되도록 젊은 국내 작가들의 소설들을 선정해 읽으려 노력하는 '독하다 토요일’이지만 유독 강화길과 작가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음복」이라는 단편을 읽고 강화길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기 시작했죠. 지난달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과 함께 읽은 책은 강화길의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지키느라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각자의 집에서 줌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김하늬 씨는 이 소설을 2017년에 읽었고 어딘가에서 작가를 한 번 만난 기억도 있는데 작가가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호수'라는 단편을 토대로 만든 장편소설인데 특히 이 작품은 다 쓰고 나서 200매나 쳐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작가로서 고민이 컸다는 얘기겠죠.  소재는 어떻게 얻었느냐는 말에 작가가 울먹였다는 얘기도 기억이 납니다(정확하진 않습니다. 제가 게으름을 피우느라 모임 리뷰를 이제야 쓰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윤혜자 씨는 "잘 쓴 소설은 아니다. 감정 몰입이 안 되길래 남자가 쓴 줄 알았다."라고 하면서 스토리나 문장보다는 사회적인 의미에 더 방점을 찍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박재희 씨는 매우 재밌었고 구성도 괜찮았다는 반론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는 제목의 상징성도 훌륭했는데 다만 등장인물들이 너무 좁은 곳에 모여 있는 느낌이 아쉬웠다고 했습니다. 이미경 씨는 "처음엔 좋았다."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만나게 되는 제인 에어, 멀베이니 가족, 미녀와 야수, 빨간 구두 같은 작품과 모티브 들이 모두 흥미로웠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폭력을 비롯한 사건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는 것을  '괄호'로 상징한 것도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건에만 매달리는 건 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서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임기홍 씨가 자기는 이 소설이 너무 어려웠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잘 몰랐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피하고 싶은 소재이고 또 잘 알지 못했던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와 맞닥뜨린 거라 그랬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일 파격적으로 웃긴 건 새로운 멤버 이연서 씨였습니다. 그녀는 제가 이번 시즌의 도서목록을 선정하면서 'SF도 좀 넣었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그럼 유리가 안드로이드인가?"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꼬인 사람이다'라고 고백을 해서 모두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이연서 씨는 이번 시즌에 새롭게 합류한 신입 회원인데 그동안 드물었던 이십 대 여성 회원이고 독특한 발상과 평범하지 않은 화법으로 일관해서 여러 모로 재밌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입시 준비를 하느라 다음 달엔 이 모임에 참석을 못 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모여서 함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그걸 말릴 수야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한 뒤 다시 합류하기를 바라며 운을 빌어주었습니다.


김은주 씨는 사람들 만날 일이 있어서 낮술을   했다고 하며 스마트폰으로 잠깐 참여를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 이런 주인공을 선정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걸  일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무척 힘들어지더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의 문장은 좋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문장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창때의 공지영이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하고 싶은 얘기를 굉장히 스트레이트 하게 쏟아내는 우직한 스타일이 지난날의 공지영을 소환했던  같습니다.


이미경 씨가 소설을 읽으며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어떤 때는 자신이 소설  '이강헌' 같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사연이든  품어 주려고만 했던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된 결정이었고 급기야  주제로 어린 딸과 논쟁을 벌이다가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밖에도 소설로 인해 촉발된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들이 앞다투어 이어졌습니다. 소설이 여성과 성폭력에 대한  정면으로 다루다 보니 생각 외로 토론이 매우 뜨거워졌습니다.


윤혜자 씨는 소설 속에서 '죄책감'이라는 단어에 꽂혔다고 하면서 우리 시대에 '이강헌' 너무나 많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에 나온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작가의 자기 고백일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소설에서 다루는 성폭력이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함을 느꼈다는 김은주 씨의 말에 박재희 씨는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안지 모르겠다'라고도 했습니다.  쓰인 소설을 통해 공감의 폭을 넓혀간다는 것이겠죠.

김하늬 씨가 '진아'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얘기를 하면서 토론은 그야말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이건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욕의 문제'라고 했더니 모든 성폭력은 '영혼 살해'와 같은데 우리 시대에 성폭력이라는 게 사실은 너무나 흔한 일이라며 다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마 백 년이 흘러도, 세대가 세 번 정도 바뀌어도 지금의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이야기들이 여성 회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 예로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국민은행 면접 사건' 이야기가 다시 불려 오기도 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자기가 19년 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소회를 말했는데 특히 '유리'가 그런 취급을 받는 건 사람들이 '자기 발 밑에서 선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는 씁쓸한 통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것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순식간에 또 우울해졌습니다.


사실 저는 이 소설이 각 캐릭터마다 주어진 역할을 너무 착실하게 소화해 내는 소프 오페라 같아서 싫었는데 워낙 주제의 반향이 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열띤 토론이 이어져 놀라고 말았습니다. 작가의 역량보다도 독자의 열의가 더 크게 작용한 드문 예가 아니었나 합니다. 토론은 활발했고 자리도 즐거웠지만 "그 어떤 성폭력 사건도 뉴스화 되는 건 극소수입니다."라는 하늬 씨의 말에 다시 한번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고 힘들지만 이런 이야기를 문학에서 다루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톡토 후기'입니다. 저의 게으름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내일 또 '독하다 토요일'입니다. 내일 같이 읽을 책은 편혜영의 『죽은 자로 하여금』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밀리지 않고 독토 후기를 써보리라, 피노키오처럼 다시 한번 다짐해 보는 겁니다. 네, 써야죠. 이제 후기 꼭 쓸 겁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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