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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6. 2021

진심 가득한 필자 덕에 베스트셀러 편집자가 되어본 사연

카이 단상집 『예쁘다, 너』

내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을 냈던 몽스북 안지선 대표가 전화를 했다. 카이라는 뮤지컬 가수를 아느냐고 묻길래 당연히 안다고 했더니 이번에 그의 책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일상에서 길어 올린 단상들을 모은 책인데 시와 산문의 경계에 있는 글들이라 전문 편집자나 시인보다는 카피라이터 출신인 내가 원고를 읽어보고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는 게 안 대표의 부탁이었다. 이메일로 도착한 300여 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선 놀랐던 건 모든 글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카이는 학력 좋고 인물 좋은 뮤지컬 가수임과 동시에 연약한 심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소유한 문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무대를 사랑하는 뮤지션이었고 꽃과 카메라를 사랑하는 한량인데 그러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 냉철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 번 감탄했다. '도구를 사용하면 인간이 되지만 사람을 이용하면 짐승이 된다'는 아포리즘에서는 현자의 지혜가 느껴졌고 '꽃을 향한 최고의 예의는 뒷짐 지고 그저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글에서는 진정 매너를 아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가 하면 '해라 해라 하더니 해줘 해줘 한다'는 어머니를 그린 짧은 단상에서는 오랜 세월의 변화를 순간에 잡아내 압정에 박아놓는 시인의 통찰이 느껴졌다. 거의 다 좋은 내용이었지만 길거나 문장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수정을 해서 보내면 언제나 깔끔하게 편집자의 의견을 수용해 주는 매너를 보였다. 자유롭지만 예의 있고 넘치는 재능만큼 겸손 또한 충만한 필자였다.


나는  책의 편집을 맡은 김에 인터넷 서점에 실리는  소개 글까지 썼다.     손으로 만지듯 읽었던 글들이라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중에도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위주로 엄선해서 다루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라는 가수의 고정팬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진심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부디  책이 스테디셀러로 남아 '유명인이  ' 아니라 '유명인이 썼는데도 꾸준히 사랑받는 '으로 남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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