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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2. 2021

없는 것을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인간의 속성에 대하여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랑종』 리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영화 『랑종』을 보면서 지난주에 시청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청양 모녀 사망 사건' 편을 떠올렸다. 귀신 들린 모녀가 함께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범죄 심리학자는 "아이가 어른들에게 헛것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라고 말한다.

설사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도 무당에게 데려가는 대신 병원 정신과로 갔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와 이모는 자신이 영험한 스님이라 주장하는 사기꾼 무당에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에게 귀신이 씌었으니 그걸 쫓아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들은 무당에게 속아 순식간에 일억 원이 넘는 돈을 날렸고 결국 모녀는 추운 겨울 물가에서 옷을 벗은 시체로 발견됐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간에게는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랑종』은 모든 것에 귀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태국의 샤머니즘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무당은 귀신을 관장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내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신에게 무당으로 '선택당한다고' 믿는다. 아무도 신이나 귀신을  적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것으로 인해 촉발된 기이한 현상들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긴 한다. 영화는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다큐팀의 합류'라는 페이크 형식으로 얽어맨다. 귀신 들린 여주인공 밍의 퇴마 의식을 앞두고 제작진이 설치한 CC-TV 포착된 모든 장면은 사실 반종 감독과  영화의 시나리오  제작을 맡은 나홍진 감독이 꾸며낸 것들이다. 그러나 죽자고 반복되는  '괴랄한 사실성' 어느덧 중독된 관객들은 그걸 팩트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종과 나홍진은 신이 났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두려워하면서도 끌려다니는 인간의 나약함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131분의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은 온갖 불쾌하고 찝찝한 장면들을 견뎌내며 즐거워한다. 돈을 내고 공포나 나쁜 기분을 경험하는  놀이공원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관건은 얼마나 '그럴듯하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합격점이다.


사람은 없는 것도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정치 문제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믿는(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길 바란다. 그래서 '박정희의 정신적 유산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찍어준 박근혜는 텅 빈 껍데기였고 '워낙 많이 해 먹은 사람이니까 이젠 안 해 먹고  다른 사람도 못해 먹게 하겠지'라고 해석했던 이명박은 4대강 사업 등으로 천문학적 사기를 쳤다. 조국이나 윤석열에 대한 지지나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자신이 있었으면 하는 것, 또는 있다고 여기는 것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없는 것도 있다고 믿게 된다. 정치인을 향한, 또는 그 정치인의 지지자들을 향한 미움과 몰이해도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극장 안이 아니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이면 끝나지만 정치 현실은 우리가 각자 숨을 놓고 저세상으로 갈 때까지 계속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지 말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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