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와 나누는 철학적 대화

오랜만에 써보는 '토킹 캣 순자'입니다.

by 편성준

어젯밤 일찍 자는 바람에 모처럼 새벽에 깬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양귀자의 첫 장편소설 『희망』과 메디치에서 보내준 소니아 샤의 『인류, 이주, 생존』을 번갈아 읽고 있고, 순자는 책상 위로 올라와 나를 물심양면으로 방해 중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는 습성이 있는데 순자가 자꾸 내 메모지와 노트 위로 올라와서는 배를 깔고 자는 척을 하는 것이다. 일종의 시비다. 술 마신 남자 사람이면 벌써 점잖은 말로 타일러 보내겠지만 순자는 고양이라 그럴 수도 없다. 미치겠다.


순자 : 에엥(나랑 놀자)

성준 : 싫어!

순자 : 에엥(웬일로 새벽부터 일어나서 책질이야? 그러지 말고 나랑 놀자)

성준 : 나는, 이게 노는 거야.

순자 : 앵~(나는 인간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래 봤자 먹고 자고 싸는 게 인생 아닌가?)

성준 : 아이고.... 인간의 삶은 의식주만으로 채워지지 않아.

순자 : ......?

성준 : 경제적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긴 하지만

순자 : .....?.

성준 : 돈만으로 인간의 삶은 채워지지 않는다.

순자 : ......?

성준 : 인간은 의식주 말고도 문화를 흡입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듯 책을 먹고

순자 : ......?

성준 : 영화나 연극을 입는다.

순자 : ......

성준 : 집에서 잠을 자고 사무실에서 일하듯

순자 : ......

성준 : 박물관과 화랑을 거닐어야 하는 것이다.

순자 : 뭐래......?

성준 : 그래서 넌 타인인 거야. 타인은 날 이해 못하지.

음. 아니, 넌 고양이니까 타묘라고 해야 하나?

순자 : 에엥~(그냥 타양이라고 해라)


순자가 나의 고매한 인문학적 통찰을 이해할 리가 없는데도 나는 고양이 순자를 앞에 앉혀놓고 새벽부터 헛소리를 쏟아내고 있으려니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갑자기 몹시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성북동 커피숍 <일상>에서 사 온 드립백 커피를 한 잔 내려야겠다. 순자는 이미 잔다. 아내도 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순자의 진퇴양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