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우는 건 인간들뿐이다

토킹 캣 순자의 슬기로운 항변

by 편성준

그젯밤엔 나와 함께 사는 편성준이 새벽 두 시인데도 잠을 못 자고 마루로 나와 뭔가를 끄적이고 있길래 책상 위로 올라가 노트 위에 앞발을 척 올려놓고 방해 공작을 펼쳤다. 편성준은 "순자, 너 도대체 왜 이러니?" 하면서 나를 만류했다. 그러나 말린다고 그만둘 내가 아니다. 그는 결국 내 말을 듣게 되어 있다. 내가 만지라면 만지고 물을 달라면 물을 줘야 하는 것이다. 사 년 전 그들이 나를 데려오면서 충성을 맹세한 이후로는 늘 그렇다. 그런데도 정작 윤혜자 편성준 커플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순자야, 왜 울어?"다.


나는 다소 어이가 없다. 도대체 내가 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때 맞춰 사료 잘 줘, 잠도 푹 자, 가끔 이렇게 간식도 주는데(몸에 안 좋은 츄르를 끊어야 할 텐데). 요즘은 마당에도 자주 나가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더위를 식히다 들어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울 일이 전혀 없다. 그냥 에엥~ 하고 의사 표시를 하는 것뿐인데 인간들이 그걸 잘못 알아듣고 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오랫동안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온 인간들은 애꿎은 동물들에게 운다는 누명을 씌어왔고 그들과 오래 유대관계를 맺어온 개들만 웃는다 외에 '짖는다'는 또 다른 표현방식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들의 오만이다. 예를 들어, 매미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알고 보면 그들은 얼마 안 남은 짝짓기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존재 증명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새들도 울지 않는다. 참새들의 '짹짹'이 우는 소리로 들리는가. 울고 있는 건 오로지 인간들뿐이다. 눈치가 빠른 나는 그들이 우는 걸 자주 본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들은 수시로 한숨을 내쉬고 수시로 운다. 어제도 윤혜자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별일 없지. 무슨 별일이 있겠어."라고 깔깔깔 웃으며 울었다. 남편 편성준은 한밤중에 일어나 책을 읽는 척하면서 울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울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울 일이 많을까. 돈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울고 돈이 많은 사람은 많아도 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챙겨야 할 게 많다며 울고 낮은 사람은 억울한 게 많다고 운다. 나랑 같이 사는 인간들은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노는 주제에 수시로 운다. 사실 나는 그들이 안 됐다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가엽게 여긴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조금 위로가 될 테지만 멍청한 인간들이 그럴 리가 없다. 그들에게 나는 그냥 일개 고양이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편성준이 내게 와서 바보 같이 인사를 한다.

성준 : 순자, 잘 잤어. 덥지?

순자 : 너도 사시사철 털코트 입고 있어 봐. 덥지.

성준 : 에어컨 틀었다.

순자 : 에어컨이 너무 세. 창문 좀 열어.

성준 : 창문 밖에 뭐가 있어?

순자 : 너 힘든 거 다 알아. 그러니까 기운 내고...

성준 : 순자야, 왜 울어? 뭐 줄까?


아휴, 한숨이 나온다. 뭐 좀 잘해 주고 싶어도 잘해 줄 수가 없다. 인간들은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종족이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잠이나 자련다. 그저 니들 앞날에 울 일이 좀 적어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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