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 캣 순자
책을 내고 나서는 한동안 북토크를 많이 하러 다녔는데 요즘은 글쓰기와 책쓰기 교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안국동에서 했던 글쓰기 강의를 마치고 내가 쓴 후기를 마침 한 논술학원 원장님께서 읽고 자신도 내 글쓰기 강의가 듣고 싶다 하시는 바람에 신사동에 있는 논술학원 건물에서 '편성준의 위트와 유머 있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강의를 새로 열게 되었다. 코로나 19가 너무 기승이라 조금 미룰까도 생각했지만 평일 낮에 강의실에서 하는 교육이므로 딱 일주일만 미루고 다음 주부터 강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뜬 공지를 보자마자 참여 신청을 해준 분들 덕분에 글쓰기 클래스는 금세 마감이 되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도 도서관 강연 일정도 몇 개 잡혔다.
글쓰기 강의 외에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외부 매체에 실리는 칼럼 쓰기다. 우리은행 VIP 고객을 위한 매거진 《투 체어스》에 내가 재밌게 읽은 단편 소설들을 두 달에 한 번씩 소개하고 있고 《더술닷컴》이라는 전통주 웹진에 네 달간 술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는데 이미 두 달치를 썼다. 그리고 메디치미디어에서 제안해 온 '부부 리뷰단' 프로젝트 덕분에 아내와 함께 한 달에 두 번씩 메디치에서 나오는 인문과학서적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다. 메디치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게 지난 달인데 다행히 내가 쓴 첫 리뷰가 반응이 엄청 좋았다(권은중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리뷰는 현재 750회 넘게 공유되었다).
오늘 아침엔 그저께부터 쓰고 있던 소니아 샤의 『인류, 이주, 생존』이라는 책의 리뷰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책상 위로 순자가 올라왔다. 요즘 부쩍 밥을 안 먹길래 아내가 입을 벌려 조사를 해보니 잇몸이 많이 부어 있던 순자다. 고양이 치과치료는 예약부터 본 게임까지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기에 아내와 나는 또 자금 걱정에 한숨을 폭폭 내쉬었지만 행여 순자가 부담을 느낄까 봐 그런 얘기는 안 하고 그냥 평소처럼 그녀를 대했다. 순자는 언제나처럼 나른하고 의기양양하게 내게 시비를 걸었다.
순자) 오늘은 새벽부터 웬일이냐?
성준) 응. 리뷰 쓸 게 좀 있어서.
순자) 혜자 아줌마는 벌써 썼더구만.
성준) 나는 어제 다른 일로 좀 바빠서 오늘까지 써 보내준다고 했거든.
순자) 그러게 저녁에 술 마실 시간에 미리미리 좀 하라니까.
성준) 참, 니 얘기를 글로 쓰기로 했다.
순자) 조심해라. 나 초상권 있다.
성준) 비싸냐...?
순자) 고양이신문이 내 매니저야.
성준) 고양이도 그런 게 있나?
순자) 당연하지. 고양이는 사후 12년 동안 초상권을 보장받아.
인간은 사후 70년, 고양이는 12년!
성준) 나름 합리적이네.
순자) 작가 이름이 뭐야?
성준) 편성준이지.
순자) 가명을 써봐. 나쓰메 고세키.... 어때?
성준) 뭐? 나쓰메 소세키 패러디냐? 유치하게.
순자) 한국에서 고양이 얘기니까 고세키.
성준) 나 참. 그럼 개 얘기 쓰면 나쓰메 개세키냐?
순자) 냐하하.
성준) 정말 수준 하고는...
순자) 재밌잖아.
성준) 아재 개그 하지 마라.
그리고 너 왜 나한텐 존댓말 안 하냐?
순자) 니가 그랬잖아. 순자는 왠지 반말을 할 것 같다고.
쓴 대로 이루어지이다...
성준) 아내가 모르기에 망정이지.
순자) 아줌마한테는 반말 안 해.
성준) 아내가 너랑 대화를 해?
순자) 그럼. 너보다 말이 잘 통해.
성준) 거짓말하지 마. 그렇다면 아내가 내게 그 얘길 안 할 리가 없어.
순자) 흥, 아내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는군.
성준) 웃겨.
순자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며 햇볕이 비치는 마루 끝으로 가서 앉았다. 이제 또 하루 종일 말 못 하는 공양이 행세를 할 모양이다. 나는 순자가 얄밉고 아내와 대화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순자와 대화를 나누었다면 아내가 내게 그 얘기를 안 할 리가 없다. 가만, 혹시 순자와 아내 사이에 내가 모르는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닐까.......음. 순자가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