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메모

학교도 회사도 다니기 싫어했습니다

by 편성준

<아내의 메모>


시골집에서 자랄 때 식구처럼 지내던 소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은 유병록 시인의 산문집 『그립소』를 읽다가 "어렸을 때 등교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라는 부분에 아내가 밑줄을 치고 '편성준과 정반대 ㅋㅋ'라고 써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가는 걸 죽도록 싫어했는데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TV 뉴스에 출연해 "빨리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놈을 죽이고 싶었다고 한 게 기억나서 써 놓은 모양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 가기 싫어한 것만큼 커서는 회사 가는 게 싫었다. 딱히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매일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게 지겨웠을 뿐이다. 그래서 MBC애드컴이라는 회사를 다닐 때 정국동 차장님이 회사 창립기념일에 '10년 근속상'을 타고 부상으로 황금열쇠를 받았을 땐 너무나 놀랐다. "와, 그럼 정 차장님은 지난 십 년 간 눈만 뜨면 회사에 출근했다는 거잖아요. 아니, 무슨 삶에 그렇게 드라마가 없어요?" 내가 사무실 파티션 사이에 서서 이렇게 철없는 소리를 지껄이자 그렇지 않아도 나를 미워하던 정 차장님은 너무 어이가 없는지 그냥 허허 웃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민경범 차장님이 혀를 끌끌 차며 "편성준 씨도 회사 오래 다니기는 힘들겠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 회사를 6년이나 다녔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날이면 날마다 출근하기 싫어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서 회사로 갔다. 광고회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에 안 가는 일요일엔 아예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경우엔 월요일이면 목이 잠겼다. 전날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았다. 한 번은 대학 선배에게 "형, 저는 아직도 회사를 싫어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도 절 싫어해요."라는 내용의 안부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 재작년부터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한 권 냈고 여기저기 글을 기고하는 한편 글쓰기 강의도 하러 다닌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므로 생활은 예전보다 빡빡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삶이 훨씬 좋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책을 읽고 아무 때나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일상이 아니다. 나의 이런 바람을 이해하고 적극 응원해준 아내가 고맙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말은 하지 마시라. 나는 나라를 구하는 등의 거창한 일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냥 지금처럼 아내와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술잔을 주고받다가 어느 날 한날한시에 홀연히 죽어버리는 게 소박한 꿈이다. 아차, 일요일 아침부터 죽는소릴 하면 안 되지. 취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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