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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1. 2021

'뭐든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라던 작가의 충고

콜럼버스의 달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어제 역삼동에 있는 한 구립 도서관에서 열렸던 강연은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40명 가깝게 참여해 주셔서 정말 즐겁고 놀라운 자리였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이지만 '줌'이라는 소통 수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저는 '나답게 나이 들기'라는 주제로 책 쓰기, 한옥 고쳐 이사하기 등등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 벌였던 여러 가지 행각들과 월조회(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 등 예전부터 제가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쓸 데 없는 일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실수담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미리 책을 읽고 온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제 얘기가 청중에게 쏙쏙 빨려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카메라를 꺼 놓고 계셔서 저는 강의 도중 몇 번이나 '화면 공유'를 멈추고 각자의 카메라를 켜달라는 부탁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집안이 너무 지저분하고 옆에서 남편이 진공청소기를 쓰고 있어서 못 켠다고 하시길래 지저분해도 상관없으니 남편에게 청소는 좀 나중에 하시라 하고 화면을 켜달라고 했습니다(집안은 그리 지저분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이더라도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정말 다르니까요.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의가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어떤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글을 쓰니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었겠지만 나처럼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도 글쓰기에 자신감이 충만해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늘 아침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른 곳에서 글쓰기도 가르치지만 매 순간 자신감보다는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처지이기도 하고요.  어떤 대답을 해 드려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박근형 작가와 있었던 짧은 일화를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박근형 작가가 극본을 쓰고 연출도 했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두 번째 보았을 때 마침 함께 갔던 배우 이승연과 작가의 친분 덕분에 저도 공연 뒤풀이 자리에 참석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이 난 저는 배우나 연출부 인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박근형 작가가 곧 군대를 간다는 막내에게 술을 따라주며 "'뭐든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살아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박근형 작가를 바라보았습니다. 군대를 간다는 친구에게 용기를 주진 못할 망정 저런 악담을 들려주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 며칠간 그 장면을 되새겨 보니 어느 순간 박 작가의 의도가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이었습니다. 박 작가는 뭐든 안 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디폴트'로 심어 놓고 살다 보면 사사건건 안 되는 일에 크게 실망할 이유가 없고, 또 어쩌다 잘 되는 경우엔 크게 기뻐할 수 있다는 인생철학을 전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먼저 살아 본 대 작가이자 어른의 지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남이 해 놓은 일을 보면 왠지 쉬워 보이고 운이 좋아서 된 것처럼 생각하고 싶죠. 저는 질문한 분에게 뭐든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니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부터 찾아보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질문자께서는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성공한 사람은 누구든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아주 여러 번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뮤지션들 보면 정말 잘하죠? 그런데 시청자들은 그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콜럼버스의 달걀이 있습니다. 삶은 달걀의 껍질을 깨고 그걸 세워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콜럼버스의 그 일화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쉬운 달걀을 찾을 생각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콜럼버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번에 콜럼버스처럼 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좀 알려 주십시오.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죽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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