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생각하지 마, 자막으로 다 알려줄게

유튜브 한글자막을 보며 든 생각

by 편성준

아침에 무슨 책을 읽다가 리뷰 쓸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우리나라 기업인의 일상을 다룬 SBS 스페셜을 찾아보았다. 예전에 방송된 걸 뒤늦게 보는 것이었는데 성우의 나레이션은 그냥 오디오로만 나오지만 그 기업인이 하는 모든 말은 실시간으로 화면에 자막이 따로 표시되니 눈으로 좇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점이나 터미널 같은 장소에서 오디오를 꺼놓아도 시청자들이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글 자막을 표시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은 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을 때와 달리 TV나 영화를 볼 때는 뇌 기능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잠을 자거나 멍하니 있을 때처럼 수동적인 태도가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그런데다 자막까지 덤벼들어 모든 걸 설명해 주지 못해 안달을 하니 시청자의 의식은 더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까지 자막에 의해 일반화되고 규격화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일부러 자막을 안 읽고 화면을 보았더니 기업이 하는 얘기가 좀 다르게 들리고 집중이 되는 것 같았다.


뭐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위험의 시작이다. 더구나 그게 우리의 무의식을 파고드는 메시지나 미디어일 때는 그 폐해가 더 심각하다. 세상이 자꾸 좋아진다고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진 말자. 내가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새삼 TV나 유튜브를 집어던지고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가자는 꼰대 같은 얘길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자막만큼은 좀 의심을 해보자. 어순도 엉망인 출연자들의 무의미한 멘트까지도 놓칠세라 그악스럽게 입혀대는 자막이나 출연자의 심리 상태까지 다 설명해 주는 'TMI' 자막을 볼 때마다 "넌 생각하지 마, 우리가 자막으로 다 알려줄게."라고 하는 것 같아 나는 좀 섬뜩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침에 일어나도 내가 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