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 은인이다

새벽에 콩나물국밥집에 가다 생긴 일

by 편성준

계속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떠보니 아내가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어제는 서울시민대학에서 새 강의를 시작하는 등 무척 피곤한 날이었는데도 막상 자리에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마루로 나가 소설책을 뒤적이다가 두 시쯤 들어와 잤는데 아내는 그때 내 기척에 깬 뒤 잠이 안 와서 계속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산책 나가서 일흥콩나물국밥집이나 갈까?" 아내는 속이 쓰리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제 이성은 작가와 마신 술이 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이렇게 청할 때는 망설이면 안 된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바로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어둑한 거리엔 벌써 많은 차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어쩌다 새벽에 나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늘 반성을 하게 된다. 한성대입구역 사거리 건널목을 건너 밑으로 이어지는 성북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일흥콩나물국밥까지 갔다. 국밥집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침 일찍 문을 연다고 생각했는데 7시는 넘어야 영업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전주콩나물국밥집으로 가자.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어서 평소엔 잘 가지 않는 집이었는데 지금은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이 집은 원래 24시간 영업이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그래도 11월 1일부터는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으니까 일찍 문을 열 것이다. 성북천길을 벗어나 한성대입구역 과 성신여대입구역 사이 큰길로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전철역까지는 멀지......?" 내가 에둘러 이렇게 물었고,

"왜, 똥 마려?"라고 아내가 직설적으로 받았다.

아랫배에 가스가 꽉 찬 느낌이었다. 지금은 참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저기, 청소하시는 아저씨에게 화장실 물어봐." 아내가 길 건너 오피스텔과 예식장 건물 앞에서 낙엽을 쓸고 계시는 건물 경비 아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아저씨를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아저씨, 제가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요. 화장실 쓸 수 없을까요?" 아저씨가 나를 보고 중얼거렸다.

"지금은 아줌마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네, 깨끗하게 쓸게요. 정말 웬만하면 제가 이러지 않는데......" 나의 절박한 표정을 거듭 확인한 아저씨가 빗자루를 내던지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화장실에선 마침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업무를 마치고 나오시는 중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화장실 문을 따주는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 바로 뛰어 들어가 변위 위에 앉았다.

"나, 화장실에 무사히 들어왔어." 내가 전화를 걸어 이렇게 외치자 아내도 기뻐했다.


똥을 처리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누는 것과 싸는 것이다. 똥을 누는 건 인격을 해칠 일이 별로 없지만 싸는 행위는 인격 유지에 상당한 해를 끼친다. 더구나 그 장소가 이른 아침 길거리라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나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 두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이 있었다. 오천 원짜리를 드리자. 만 원짜리를 드리면 부담스러워하실 거야. 멋대로 액수를 정한 내가 밖으로 나와 아저씨를 찾아보니 아저씨는 여전히 낙엽을 쓸고 계셨다.

"이거, 담뱃값이나 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하며 아저씨 잠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뺐다.

"아유, 왜 이러세요?" 아저씨가 질겁을 하는 시늉을 하는 사이에 나는 얼른 방향을 바꾸어 아내가 먼저 들어가 있는 전주콩나물국밥집을 향해 냅다 뛰었다. 급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 은인이라고 한다면, 오늘 아침 이 아저씨야말로 나에겐 세상을 구한 것보다 위대한 영웅이다. 아저씨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벌어졌을 일은 아아, 상상하기도 싫었다. 겨우 오천 원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킨 값을 치른 게 좀 찔리기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아무쪼록 경비 아저씨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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