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Oct 30. 2021

착한 사람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

김태균의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리뷰

누구나 글을 쓰기 전에 제일 많이 듣는 소리는 '솔직하게 쓰라' 말일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솔직하게 쓰다 보면 글이 무거워지기 십상이다. 너무  쓰려고 하거나 뭔가 교훈적인  써야겠다는 강박이 생겨서다.  책의 제목은 그런 과정에서 나왔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메일로 하소연하는 저자에게 출판사 사장님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주문을 했고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김태균은   집안 가구에 차압 딱지가 붙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책의 포문을 열었다. 덕분에 원고는  심각해졌고 김태균은 ' 이상  쓰겠다고 전화해야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글보다는 가벼운 글에 김태균이   보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출판사 사장님은 김태균이 인스타그램에 썼던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라는 구절을 찾아냈고, 그걸 제목으로 추천하며 그냥 공감하고 즐길  있는 글을 써보라고 독려했다. 김태균은 다시 글을 쓰며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다시 만났고 잔뜩 힘이 들어갔던 마음은 비로소 몽글몽글해졌다.


이 대목은 글쓰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장면이다. 아내는 첫 번째  챕터  <세상에 나를 툭 던지고>의 마지막 글인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를 읽고는 볼펜으로  '글쓰기 교본 같은 글'이라 메모를 해 놨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개그맨 김태균은 자신을 알고 싶어 혼잣말로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계속하다가 결국 찾은 방법이 '글쓰기'였다고 고백한다. 군대에서 썼던 글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도 받았고 아들이 태어난 뒤 쓴 육아 일기로 베스트셀러도 경험해 봤지만 뒤늦게 다시 시작한 글쓰기의 효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써내려 가다 보니 스스로의 단점이나 결핍에 대해서도 긍정하게 되었고 나중엔 누군가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해주는 느낌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남들이 내 글을 어떻게 읽을까 눈치 보기 이전에 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쓰는 기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쓰는 행위 자체가 보상이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일 년 간 이 책의 원고를 쓴 김태균은 쉰 살을 맞아 "더 늦기 전에 이쯤에서, 나를 들여다본 일은 잘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균은 개그맨이지만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성정은 그가 쓰는 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단히 웃기는 아이디어보다는 순하고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  좋다. 술을 좋아하는 저자가 처음 처가 식구들을 만나러 갔을  술을 전혀  하는 처가 사람들을 보고 절망하며 '아들이 빨리 자라길' 바라는 대목은 풋풋하게 웃긴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소년 김태균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상품을 타고 좋아하는 장면은 나의 어릴  똑같은 추억과 겹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16 동안 《컬투쇼》를 진행하면서   번도 지각을  적이 없다는 대목에서는  성실함에 고개가 숙여지고 '만약 처음부터 무조건 16년은 해야 한다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으면   있었을까?'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어떤 결과가 발생할 때까지의 맥락을 짚어보는 그의 통찰력을 느낄  있다. 컬투 공연을 보면서 웃는 관객들을 보면 행복한데, 모두가 웃을  혼자만 웃지 못하는 관객이 있음을 말하고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였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아내도 나도 왈칵 눈물이 났다.


컬투쇼에 얽힌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다 재밌는데 특히 '지금 화장실인데 휴지가 없다'는 사연을 보낸 청취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휴지를 가져다주는 긴박한 상황들이 생방송으로 펼쳐지거나 자살을 하려 한강으로 가던 사람이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무심코 웃다가 마음을 바꾼 사건들은 도저히 꾸며내기 힘든 것들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컬투쇼에 보내는 사연 중에 똥이나 방귀 얘기가 많은 것은 '방송에서는 고상한 말이나 바른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고백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똥오줌 얘기엔 사족을 못 쓰는 편이라 더 정겨웠다.


나이 쉰의 김태균이 쓴 이 책의 책의 부제는 '강박 탈출 에세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은 글쓰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문제점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쉰 살쯤 되면 철이 들고 어른이 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인생이 뭔지 모르겠고 앞날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나 노후 대책도 없다. 심지어 작년엔  싸우고 아주 인연을 끊은 친구도 있다.  김태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쉰 살이 되었다고 갑자기 어른 행세를 하거나 뭔가 깨달은 척하지 않는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게 있고 지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너무 착해 빠졌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한때는 착하다는 말이 듣기 싫어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그냥 착한 사람이 계속 착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기로 했다. 스무 살 김태균에게 쉰 살 김태균이 해주는 충고 중 "갈등의 순간이 오면 도덕적으로 가장 옳은  선택을 하는 게 제일 현명하더라.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쪽으로 말이지."라는 문장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기로 한 것 같다. 만약 자기도 모르게 착한 마음이 작동되면 그때는 그냥 착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아내가 다니는 단골 꽃집 이름을 자신의 책에서 굳이 밝히거나 친하게 지내는 선배 원태연이 새로 낸 에세이 제목을 익명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소개하는  것도 어떡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마음의 표현일 뿐이다.


몽스북의 안지선 대표는 책을 만드는 데 진심인 사람이다. 기획력과 촉이 좋아서 늘 트렌디하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방향을 저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물론 제목 짓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위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인스타그램을 뒤져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라는 이 책의 제목도 지었고 나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제목도 안 대표가 편집 회의 대화 중 찾아낸 작품이다. 또한 김태균은 내 책이 나오자마자 득달 같이 읽고 극찬 어린 리뷰를 써 준 최초의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때 리뷰 내용 중 '저자를 만나서 소주 한 잔 하고 싶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책을 핑계로 그때 무산되었던 술자리를 다시 성사시켜 봐야겠다. 이 책의 날개엔 내 책과 내가 편집을 맡았던 팝페라 가수 카이의 단상집 『예쁘다, 너』의 광고가 실려 있다. 말하자면 책 자체가 움직이는 광고판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정성껏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김태균의 새 책을 강추한다. 쉽게 읽히는 책인데 여러 군데 밑줄을 치고 귀퉁이를 접어야 했다. 개그맨 김태균의 솔직한 생각과 경험들이 들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착한 사람들이 계속 착하게 살 수 있는 비결'까지 덤으로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1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