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 아내에게 전해주고 싶은 하루키의 글

티셔츠에 대한 에세이집『무라카미 T』의 프롤로그

by 편성준


아리랑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무라카미 T』라는 책을 잠깐 들춰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던 티셔츠 사진을 찍고 그 티셔츠들에 대해 쓴 작은 산문집이었다. 그런데 하루키는 절대로 어느 날 "좋아, 이제부터 티셔츠 수집을 하자" 하고 결심한 뒤 모은 게 아니라 오래 살다 보니 모인 거라고 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때 "그러고 보니 티셔츠 수집 같은 것도 하고 있어요"라고 무심코 말했더니, 편집자가 "무라카미 씨, 그걸로 연재 하나 해보시겠습니까?" 하고 제안했다. 그래서 제안한 대로 잡지 《뽀빠이》에 일 년 반 정도 티셔츠를 소재로 연재했다. 그게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딱히 비싼 티셔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어쩌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짧은 글을 쓴 것뿐이어서, 이런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우리가 직면한 작금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가 될 것 같지도 않고).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전반에 걸쳐 살다 간 소설가 한 명이 일상에서 이런 간편한 옷을 입고 속 편하게 생활했구나 하는 것을 알리는, 후세를 위한 풍속 자료로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뭐,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이 사소한 컬렉션을 그런대로 즐겨주었으면 합니다.


평상어로 쓰다가 갑자기 존댓말로 끝을 맺는 웃기는 문장도 하루키스럽지만 무엇보다 그다운 것은 이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소재로도 뚝딱뚝딱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요즘 브런치에 '식사일기 365'를 연재하는 내 아내 생각이 났다. 그녀에게 이 글을 전해주면 나중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묶어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루키는 프롤로그 마지막에 티셔츠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창의의 불꽃(Creative sparks)이란 이렇게 작은 데서 피어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해준다.


컬렉션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티셔츠는 어느 것인가? 그건 역시 'TONY TAKITANI' 티셔츠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매장에서 이 티셔츠를 발견하여 아마 1달러에 산 것 같다. 그리고 '토니 타키타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 내 맘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썼고, 영화화까지 됐다. 단돈 1달러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투자 가운데 단연코 최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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