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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1. 2021

아델, 에이미 그리고 동네 친구

NBC『원데이 위드 아델』공연 본 날

김장을 다 하고 사람들이 돌아갔다. 솜처럼 지친 아내는 자리를 깔고 누우려다가 그래도 새로 담근 김치를 다시 먹어보고 싶다며 부엌으로 가더니 겉절이와 굴, 그리고 수육을 차려왔다. 김치냉장고에 있던 소주도 한 병 꺼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도 배가 부르지만 그래도 맛이 있으니 또 먹는다. 뭐 볼 거 없나 하고 TV를 켰더니 MBC에서 창사 특집으로 아델 공연을 한다는 예고를 하고 곧바로 배철수가 나와 아델 공연의 의의를 소개하고 바로 할리우드가 보이는 천문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원데이 위드 아델』공연이 펼쳐졌다.


아델은 정말 노래 실력도 탁월하고 곡도 잘 쓴다. 천재다. 공연 중간중간 오프리 윈프리와의 인터뷰도 있었는데 인터뷰어의 성실하고 능숙한 진행 덕분에 아델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body를 ‘보디’, not을 ‘놋’이라 발음하는 아델의 영국식 영어가 새삼 재밌었고 쿠엔틴이라는 청년이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는 깜짝 이벤트를 도와주는 아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아직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TV를 끄고 나가자고 했다. 동네 사는 친구를 잠깐 만나 겉절이를 전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꼭 지금 가야 하냐 물으니까 겉절이는 지금 먹어야 제맛이라는 당연한 이유를 댔다. 배가 너무 부르니 산책 삼아 좀 걷기도 해야 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얼른 옷과 야구모자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불었지만 바람은 시원하고 좋았다. 최순우 옛집 골목을 걷다가 아델이 이혼 후 술을 끊고 체중 감량에 성공한 이야기를 했다. TV에서 본 그녀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보였다. 자신감도 넘치고 행복해 보였다. 아내는 아델을 보면서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둘 다 불행한 과거가 있었지만 한 사람은 불행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고 한 사람은 그 불행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실을 곱씹다 보니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 『에이미』를 이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보며 훌쩍이던 아내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겉절이를 가져다주는 친구도 이 동네에 사는 뮤지션이었다. 김장을 한 날 졸지에 뮤지션을 세 명이나 만나게 된 것이다.


아내는 오늘 우리집에 와서 김장을 담근  중엔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김치를 나눠주고 싶어서' 김장을 담근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다고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기도 똑같은 이유로 매년 김장을 담근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약간 웃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자 세찬 바람을 이기지 하고 옆집 은행나무의 잎들이 모두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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