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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7. 2021

세 개의 감탄

성북동소행성의 심야 술자리

어젯밤 연극을 보고 나온 아내와 나는 약간 출출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원조꼬치오뎅’으로 갔다. 금요일 밤이라 손님들이 자리마다 아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장님이 오랜만이라며 아내에게 인사를 했지만 아내는 앉을자리도 없고 코로나 19 무서우니 오늘은 포장을 해가겠다고 말했다. 오뎅을 13,000원어치 포장해 집으로 가는 도중에 친한 배우 이승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금 공연 연습이 끝났는데 우리 집으로 오고 싶다고 했다. 공연팀 중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연극을 하는데 술은 전혀  마시다니 이상한 놈들이었다. 우리는 어서 오라고 말한  집으로 가서 술상을 차렸다.

승연이 대문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렸다. 누구였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배달시킨 회 배달원이 마침 집 앞에 도착해 그 음식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출발하면서 우리 집으로 회를 주문해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죠니워커 블루를 몇 잔 마시다가 소주와 맥주로 갈아탔다. 울산으로 출장을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혜민 씨도 합류했다. 승연이 요즘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강연하는 얘기와 내가 서울시민대학에서 글쓰기 강연하는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시 얘기로 바뀌면서 내가 이성복 시인의 시들을 몇 편 읽어줬고, 내친김에 박남철의 시집들(이춘도, 김상득 선생 등이 보내주신)을 가져와 또 읽어주었을 땐 승연이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고 , 최승자의 「근황」 「일찍이 나는」 등의 시를 내 에버노트에서 꺼내 읽었을 땐 아내가 먹먹하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좋아했다.


밤늦도록 술을 마셨고 주말 아침이기도 했으므로 조금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승연과 나는 곰국에 밥을 먹었고 채식을 지향하는 아내는 알타리 김치찜과 계란 프라이, 토마토 샐러드 등을 반찬 삼아 식사를 했다. 지난밤에 하지 못한 것까지 하느라 거의 한 시간을 꼬박 서서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그 와중에 아내가 와서 내가 그릇들을 잘못된 곳에 놓았고 행주 사용도 틀렸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와, 하고 감탄하며 어떻게 매번 이렇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나아지지 않는 나의 무신경함이 오히려 감탄스럽다고 말했다. 마루 저쪽 고양이 순자 자리에 비스듬하게 누워 쉬고 있던 승연은 '부부끼리 그렇게 웃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고 깔깔대며 감탄했다.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다들 감탄에 후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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