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Dec 04. 2021

신이여, 제가 이 파를 다 다듬었단 말입니까?

김장할 때 갖춰야 할 남편의 품격

아내는 올해 김장을 두 번 했다. 화요일은 우리집 '성북동소행성'에서 진행되던 《고은정의 제철음식학교_서울교실》수업을 듣는 다섯 분과 함께 하는 '김장 클래스'였고 금요일은 해마다 3년째 여행작가 박재희 선생과 함께 하는 우리집 김장이었다. 한 번도 힘든데 두 번이나 김장을 하게 된 아내는 심란함과 두려움 때문에 얼굴빛이 잔뜩 어두워졌고 나는 그런 아내의 심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적극 협조 모드'로 스위치를 돌렸다.

시작은 돈암시장에서 장보기였다. 아내는 식재료 값이 너무 올랐다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나쁜 식재료를 쓸 수도 없는 일이어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고생을 사서 하고 금액은 마이너스가 되는' 프로젝트를 해마다 반복하는 꼴인데, 그러나 어쩌랴. 김장 수업은 이미 약속한 일이고, 또 김장을 다 하고 나면 바보 같이 뿌듯해져서 "하길 잘했다..."라 중얼거리게 되는 것을. 노량진 시장으로 갈까 생각했으나 너무 멀고 차를 빌려 가기엔 주차 문제도 걸렸다. 다행히 아내가 돈암시장에서 좋은 야채 가게를 발견했으므로 월요일에 거기 직접 가서 무와 파 등 김장 재료를 고르고 배달을 부탁했다. 아내와 사장님이 거래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몰래 찍어서 카톡으로 전송했다가 '아내 사진 좀 이쁘게 찍으라'는 핀잔을 들었다.


화요일은 내가 특강을 하던 서울시민대학 마지막 강의 날이라 강연 준비를 해야 했으나 김장을 앞둔 상황에서 그럴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었다. 마당에 부려놓은 많은 채소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아내가 무를 씻고 절인 배추를 갈무리하는 등 다른 일을 다 도맡았고 나는 파를 다듬는 일에만 집중했다. "작년에 동현에게 파를 다듬으라고 했더니 아주 씻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다듬어 놨더라고. 역시 성격 나와." 아내는 내 책에도 등장하는 전직 '옆집 총각' 동현을 거론하며 무언의 압력을 가해왔다. 동현은 건축과를 나와 인테리어·익스테리어 기획과 실행으로 밥을 먹는 '꼼꼼맨'이다. 나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빠꿈이인 것이다. 그런 사람과 비교를 하다니 이건 처음부터 패배가 분명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선 동현을 이기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드는 것이었다. '그래, 내가 비록 손은 대변이 들어가는 평가를 타고났지만 그래도 끈기 하나는 있잖아(정말 끈기가 있긴 한 거야?). 천천히 차분하게 하면 되겠지......'같은 소리를 노인네처럼 중얼거리며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파단 앞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대파와 달리 쪽파는 아주 가늘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뿌리 쪽은 맑은 살이 나올 때까지 살살 껍질을 벗겨내야 하고 위쪽 초록색 부분은 색이 바래거나 시들한 부분은 가차 없이 끊어내야 했다. 작은 걸상에 앉아 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아내가 마루로 들어가 글렌 굴드의 피아노 음악을 틀어주었다. 파 다듬는 노동요로 글렌 굴드라니. 하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여러분도 다음에 파를 다듬을 일이 있으면 글렌 굴드를 틀어보시라. 그런 걸 들으면 너무 졸음이 온다 하시는 분은 파가니니의 요사스러운 바이올린을 틀어도 좋다. 아무튼 글렌의 피아노는 나의 노동을 위로해 주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쪽파들이 착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쪽파들은 까다로워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꼼짝 않고 작업을 하면서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봤던 북한의 강제노동 농장 그림이 떠올랐다. 영화 《벤허》에서 노를 젓던 찰턴 헤스턴과 노예들도 생각났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세밀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너무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대부분 눈이 먼다고들 하던데 나도 이렇게 열심히 파를 다듬다가는 눈이 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을 힐끗 보니 아내는 마당 화장실의 수도를 끌어와 물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속으로 별 그림을 다 떠올려도 아내의 성실성 앞에서는 도저히 엄살을 부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파 다듬기 과정이 모두 끝났을 때는 날이 어둑해진 후였다. 아내는 내가 다듬은 파가 다섯 단이긴 하지만 큰 단이었으므로 매우 고생이 많았다고 치하를 했다. "깨끗이 다듬어서 따로 씻을 필요가 없을 정도네."라는 과장된 칭찬이 이어졌다. 문득 동현도 이런 칭찬에 당해 노동력을 착취당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웃었다. 내가 봐도 깨끗한 발을 드러내고 가지런히 누워 있는 파는 아름다웠다. 《벤허》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받고  "신이여,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를 외쳤다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동네 스터디 카페에 가서 다음날 강의안을 준비했다. 예전에 마련해 놓은 강의안이 있었지만 그걸 가져갈 순 없었다. 틈틈이 메모해 놓은 것들을 꺼내서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었다. 다섯 번의 글쓰기 특강에 열심히 참석하고 늘 열의를 다해 수업을 들어주시는 학생들의 눈빛이 떠올라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강의할 PPT 내용을 다 갈무리하고 나니 새벽 한 시였다. 집으로 돌아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 옆에 누웠다. 아내는 자면서도 지친 얼굴이었다.


김장을 마치고 나니 제가 새로 낸 책이 도착했습니다. 제목은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입니다. 제가 이 년 전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원고를 쓰러 제주에 갔을 때 매일 썼던 글에 아내의 글까지 엮어 책이 되었고, 행성B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것은 열심히 재밌게 썼으니 책을 많이 읽어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당분간 제가 쓰는 글은 죄다  '기-승-전-여보나제주에서한달만살다올게' 가 될 것 같습니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많은 돈을 들여 집중적으로 광고를 하는 기업체와 비슷한 마음이라 여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