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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0. 2021

종이컵을 버리기 싫어서 종이컵 쓰는 습관을 버렸다

편의점 커피를 마시는 새로운 방법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데 일어나면 일단 캐비초크를 한 잔 타서 요기를 한 뒤 동네 편의점 세븐일레븐으로 가서 커피를 사 오는 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전에 하는 루틴처럼 되어버렸다. 집에서 아내가 사놓은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냉동건조 커피를 타 마시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상하게 아침엔 밖에 나가서 커피를 사 오고 싶어진다. 사실 이유는 많다. 첫째, 아직 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울까 봐 주방 기기 사용이 망설여지고(아내는 내가 물건을 내려놓을 때 조심성 없이 큰 소리를 낸다고 주의를 주는 편이다) 둘째, 세븐일레븐 커피가 다른 편의점 커피에 비해 좀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셋째, 편의점 사장님과 나누는 싱거운 농담과 스몰 토크가 즐겁기 때문이다.

문제는 컵이다. 커피를 사 올 때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뚜껑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싫어서 작년 겨울 홍익사대부고에서 코로나 19 방역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새벽에 보온병을 가져가 보았으나 커피머신의 컵 놓는 자리와 보온병 높이가 맞지 않았다. 결국 종이컵에 커피를 받아 다시 보온병에 넣고 사용한 종이컵은 바로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느끼는 거지만 매일 마시고 버리는 종이컵의 양만 해도 쌓이면 상당하다. 오늘 아침에 커피를 사러 나가려 마루 문을 열다가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라 빈 세븐일레븐 종이컵과 머그잔을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해보았다. 언뜻 보면 종이컵이 좀 커 보이지만 물을 넣어 실험을 해보니 용량이 똑같았다. 머그컵은 커피머신에 들어가고도 남을 높이였다. 나는 의기양양해서 보온병과 머그컵을 들고 세븐일레븐으로 갔다.

사장님이 인사를 하며 "큰 놈으로......?"라고 물으셨다. 1,200원짜리와 1,500원짜리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1,500원짜리를 사 간다는 걸 알고 묻는 것이다. 나는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가져온 머그잔을 커피머신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매장에서 제공하는 종이컵을 정위치에 놓으라'는 메시지만 나오고 커피는 안 나왔다.

"사장님, 이거 종이컵 아니면 안 나오는 건가요?" 사장님이 카운터를 돌아 기계 앞으로 오더니 플라스틱 문을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커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커피를 받아 보온병따랐다. 옆에서 보온병을 힐끗 쳐다보던 사장님은 보온병이 아직  찼다며 1,200원짜리  잔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작은놈'    눌렀다. 보온병이 따뜻한  커피로 가득 찼다.  

"다음엔 잘 따라지는 컵으로 가져오세요." 내가 보온병으로 옮기며 카운터 바닥에 흘린 커피를 냅킨으로 닦아내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머그컵은 당분간 사장님이 계실 때만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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