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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3. 2021

책 잘 팔리라고 일단 쓰고 보는 독전감

배지영의 『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책에서 지칭하는 '당신들'은 놀랍게도 부모님이 아니라 작가의 엄마와 시아버지였다.


그제 아침. 데드라인을 넘긴 술 칼럼이 안 써지는 와중에 배가 고파 동네 백반집 '복이네'에서 밥을 잔뜩 먹었다. 아내는 동해로 '비즈니스 여행'을 갔기 때문에 집엔 아무도 없는 데다가 곧장 귀가하기엔 배가 너무 불러  대학로 동양서림으로 갔다. 내가 신청했던 배지영 작가의 『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가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서점엔 문창과에 다닌다는 아르바이트 점원이 있길래 "지난번에 추천해 주신 소설들 정말 좋았거든요. 이번에 또 추천  좀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그녀가 추천해 준 당대 소설가 리스트를 참조해 '독하다 토요일'의 책을 선정했었다). 아르바이트 점원은 다시 알았다고 하며 책을 내밀었다.  배지영 작가는 군산문고의 상주 작가이며  『소년의 레시피』 『내 꿈은 조퇴』  『환상의 동네서점』  『군산』 같은 책을 썼고 요즘은 브런치에 '남편의 레시피'를 연재하고 있다. 나의 첫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쓴 나를 불러 군산문고에서 북토크를 하게 해 주었던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고 글쓰기 지도도 잘 하지만 요리는 전혀 하지 못하는 '치우친 재능'을 타고 난 배 작가는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해주는 밥을 먹으며 살았고, 서점에서 근무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인 것 같다. 책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학로 전봇대 아래서 책장을 잠깐 열어보니 책에서 지칭하는 '당신들'은 놀랍게도 작가의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와 시아버지였다. 


"스무 살 때부터 나는 작은 도시에서 산다. 엄마가 가본 적 없는 나라에 갔고, 엄마가 맛본 적 없는 음식을 먹었고, 엄마가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났고, 엄마가 해본 적 없는 글쓰기를 했다. 다행히도 엄마가 사는 전남 영광 법성포에는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이 있었다. "내 지영이도 와서 보고 글을 써야 하는디......." 그때마다 엄마는 중년의 딸에게 전화를 했다." 


프롤로그에 있는 이 문장을 읽으니 이상하게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엄마가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먹었고 엄마가 가본 적 없는........(아, 우리 엄마는 말년에 동료 선생님들과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셨지). 엄마가 쓴 적 없는 글을 썼는데. 왠지 가슴이 뭉클해져 책장을 닫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된장찌개나 짜장면처럼 한꺼번에 읽지 말고 누룽지처럼 조금씩 천천히 뜯어 읽을 생각이다. 그래도 이 책이 많이 팔려 여러 사람들에게 배지영 작가가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에 일단 '독전감'을 남긴다. 언제나 그렇듯이 독후감은 독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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