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아리랑도서관에 와서 이길보라 감독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중 한 꼭지를 읽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라는 글이었다.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 이길보라 감독과 그 애인은 둘 다 어렸을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영화일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의 독립영화관을 소개해 주려 만났다가 삼겹살을 먹으며 그에게 강하게 끌린 이 감독은 이틀 후면 돌아가야 하는 그를 일본으로 떠나보내든지 아니면 함께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든지 결정을 내려야 했고 이 감독은 비행기를 타는 걸 택했다.
이 감독의 부모는 듣지 못하는 농인들이다. 스물세 살 때 만났던 사람은 이 감독의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하니까 헤어지자고 했다. 이 김독은 후쿠오카에 오자마자 이 얘기를 새 애인에게 했고 새 애인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를 부모님께 들려주었다. 아들의 여자 친구 부모님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 보라도 그렇고, 보라의 보모님도 그렇고."
몇 달 후 도쿄로 출장을 온 애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요새 한국 수화를 배우고 있는데 일본 수화와 많이 비슷하다'며 주먹을 쥐고 검지와 엄지를 두 번 붙이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그 수화는 '같다'라는 뜻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아내와 내가 만든 《도서출판 소행성》의 슬로건이 'Everybody has a story'라는 게 생각났다. 그래, 모든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지. 나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시간은 많다. 아니 시간이 없다. 이야기는 발화되지 않으면 무생물이나 다름없다. 누군가의 입이나 손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이야기는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봐야겠다.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