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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9. 2021

터닝 포인트의 순간을 목격하는 짜릿함

네플릭스 《아사쿠사 키드(Asakusa Kid)》

어젯밤 코로나 19 부스터샷의 후유증으로 여기저기 몸이 아파 잠도 잘 수 없길래 그냥 포기하는 마음으로 넷플릭스를 켜서 《아사쿠사 키드(Asakusa Kid)》를 플레이했다.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자전적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이 영화는 다케시가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프랑스극장'이란 스트립 클럽에서 엘리베이터 보이부터 시작해 만담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감성 터치로 보여준다. 연기와 연출도 좋았지만 나는 특히 그가 방송계로 진출하게 되는 그 결정적 장면이 좋았다.


TV 카메라 앞에서 노인이나 자살 문제, 못생긴 여자 등에 대한 독한 만담을 주고받으며  오디션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을 중단시킨 방송국 PD가 소리친다. "야, 니들 뭐 하는 거야? 이건 방송이야. 전국으로 나가는 생방송에서 죽는 얘기, 추한 여자 얘기를 어떻게 하니? 다 바꿔." 대기실에서 심의에 걸릴 만한 걸 다 제외하고 건전한 만담 소재들을 검토해 보던 두 사람은 절망적인 표정이다. 아, 이런 건 뭘 해도 안 웃길 텐데. 그때 기타노가 일어나 탭댄스 스텝을 밟으며 말한다. "안 할 거야. 나, 그놈들 말 안 들어. 그냥 우리가 하던 거 그대로 하자!" 그리고 무대로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페이드 아웃. 그리고 점프 컷.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혐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우익 인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코미디나 영화,  등에 그의 열정과 역발상, 천진하고 건방진 아이디어 들은 언제 봐도 놀랍다. 그가 만든 영화에는 기괴한 유머와 폭력이 공존한다. 그가 코미디로 일본 열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어떤 기자가  유독 NHK에만 출연을  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자식들이 나보고 리허설을 하라고 하잖아." 나는  에피소드만으로 그에게 백기를 들었다.  또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영화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만들고, 그렇지 못한 놈들은 항상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핑계만 댄다."


얼떨결에 감독으로 투입된 그의 영화 데뷔작 《그 남자 흉폭하다》에서 양복을 입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다케시 본인의 뒷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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