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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9. 2021

요가를 하듯 소설을, 소설을 쓰듯 요가를 하는 작가

김혜나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요즘처럼 여러 사람이 읽는 글을 지향하는 시대에 독자가 딱 한 명뿐인 글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편지가 남았다. 나도 요즘 편지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초등학교 5학년 친구가 생겨 편지 쓰기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던 차에 편지 글로 가득한 김혜나의 새 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작가는  ‘해 질 무렵 메이는 차문디 언덕을 거슬러 내려가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도대체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닌데 데 왜 이렇게 어려운 요가 수련을 하는 것일까. 요가하는 사람의 자세를 보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가는 어쩌면 자신을 향한 처절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소설 쓰기와 닮았다. 소설가는 간절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위해 소설을 쓰는 존재이므로.


김혜나는 요가와 소설 두 가지를 다 하던 보기 드문 작가였다.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의 이름을 케이(K)라 지을 정도로 카프카를 사랑하지만 《어린 왕자》는 마지막 부분을 왜 이렇게 의뭉스럽게 끝냈냐며 쌩떽쥐베리를 원망하는 걸 보면 대중의 평가와 상관없이 오로지 텍스트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보기 드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도시들을 떠돌며 요가를 하고 가끔 차문디 언덕에 오르는 메이는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메이의 방황과 고민은 어쩌면 작가 김혜나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메이의 말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작가의 존재론적 고민이 반갑게 느껴졌다. 다만 메이와 케이, 요한, 윤희의 관계가 너무 서서히 드러나 초반에는 조금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소설은 자아를 찾아 방황하는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헤세의 《데미안》을 생각나게 하고 편지 글로 이루어진 부분들을 읽다 보면  버거의 A X에게》가 생각나게도 하는 작품이다. 전작 《제리》 등에 비하면 주인공은 많이 성숙하고 깊어졌지만 세상과 스스로의 관계를 의심하는 김혜나는 여전히 ‘청춘 소설 쓰고 있는 작가다. 요가로 단련된 유연한 몸과 청춘의 문장들로 쓰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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