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
모든 것이 짧아지고 간편해지다 못해 하고 싶은 얘기를 밈으로 만들어 전달하는 이 시대에 5시간 17분짜리 영화를 만들다니. 혹시 감독이 예술적 욕심이 너무 크거나 방대한 내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이렇게 길어진 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는 게 《해피 아워》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지금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2016년작이기 때문이다.
인터미션 10분을 포함해 정확히 3시간 27분이 지나면 극장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깨닫게 된다. 길게 만든 이유가 다 있었구나. 그리고 길지만 버릴 데 가 하나도 없다는 데 신기함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어설프게 강요하거나 빤한 설정 없이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자재로 침착하게 풀어놓는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영화이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삶의 정당성과 가변성까지 자연스럽게 다루는 철학적 드라마다.
예전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매그놀리아》를 내놓으면서 “긴 영화라는 장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주면 어떨까?”아는 얘기를 한 게 기억나는데 오늘 비로소 그 의미를 체득한 기분이다. 관객들을 쉽게 불러 모으기 힘든 러닝 타임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길을 선택하는 감독의 용기와 뚝심이 믿음직스럽다. 섣불리 권하기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들에겐 한 번 보라고 할 생각이다. 아내는 올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할 정도다. 확실히 좋은 영화는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