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때도 오늘》 리뷰
'1920년대 경성, 주재소'라는 자막이 뜨고 벽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묶여 있는 두 남자를 보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연극에 매료되고 말았다. 독립운동을 돕다가 각각 잡혀 들어온 두 학생은 선후배 사이임이 곧 밝혀지는데 고문과 구타를 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암울한 상황일수록 농담이 필요하다는 듯 두 사내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에 대한 논쟁을 시작으로 여자 얘기, 끝말잇기 놀이 등을 한다. 평안도와 충청도 사투리로 티카티카하는 두 배우의 대사를 드고 있다 보면 연기의 탁월함은 물론 극본도 참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희준과 오의식 배우 캐스팅으로 보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맞춰 예매를 했는데,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각본을 쓴 오인하 작가는 오의식 배우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다.
이 연극은 1920년대, 제주 4.3, 1980년대, 그리고 2020년대 전방을 무대로 네 번 바뀌는 이인극이다. 네 가지 시추에이션을 모두 보고 나면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고생도 많고 사연도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극의 제목인 '그때도 오늘'은 1920년대나 80년대나 지금이나 모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지은 것 같다. 나는 특히 20년대와 80년대 마지막 처리가 좋았고 전편에 흐르는 유재하의 노래들도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4.3 때 오의식의 제주도 사투리와 80년대 이희준의 경상도 사투리의 매력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이 연극을 꼭 보시라는 얘기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주 제대로 만든 연극을 봤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대학로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에서 2월 20일까지 상연한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