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쓰기 시작하라

글쓰기 방법론 : how 2 write

by 편성준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시절, 대학 때 알던 여자 후배가 전화를 했다.


후배) 오빠, 할 얘기가 있는데요.

선배) 응, 지나야. 오랜만이구나. 할 얘기가 뭐니?

후배) 저한테 정말 기기 막힌 아이디어가 있는데요.

너무 절묘한 아이디어라 누구한테 얘기할 수가 없어요.

선배) 그래? 무슨 아이디어인데?

후배) 기업에서 들으면 정말 좋아할 아이디어예요.

선배) 일단 나한테 얘길 해봐.

그래야 내가 어디다 얘길 해보지.


후배) 오빠, 그러지 말고 저한테 직접 클라이언트를 연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들어보면 진짜 안 사고는 못 배길 아이디어라니까요.

선배) 글쎄, 어떤 아이디어인지 내가 들어봐야......

후배) 아이, 그러면 김이 빠진다니까요.

선배) 니 심정은 이해가 간다만......


결국 후배는 그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끝내 내게 말하지 않았고 나는 곧 그 후배를 잊었다. 미대를 나온 친구였는데 광고회사를 다니거나 벤처기업을 하지도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후배가 인천에서 룸살롱 비슷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걸 봐서 그 아이디어는 영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그럴듯한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신선도를 잃는다. 뭐든 때라는 게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날카로운 식견으로 유명했던 어느 논객의 경우도 그랬다. 자신은 정치 이야기 말고도 SF에 관심이 무척 많았는데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일찍 작가로 데뷔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작가가 되기엔 아직 부족해. 그 분야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계속 작품 쓰는 걸 미루다 결국 SF 작가의 꿈을 접고 말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스무 살 무렵이 아니면 쓰지 못하는 시가 있고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유명한 작가들도 자신이 무엇을 쓸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소설가 곽재식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써보고 싶은 소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둘씩 있기 마련인데 정작 그걸 쓰는 데는 망설인다고. 그 글은 정말 잘 써야만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쓰는 건 힘이 드니까 자꾸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김이 더 빠지고 기억마저 흐려지면 그 글은 탄생도 못한 채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쓰기 시작하라. 알에서 태어나는 박혁거세 같은 글은 없다. 글이라는 건 쓰면서 생각이 발전하고 깊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글을 쓰기 하는 원동력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절박함이다. 만약 아직도 글 쓰는 게 망설여진다면 당신에겐 절박함이 부족한 것이라 봐야 한다. 바르샤바 게토에 있던 유태인들은 쪽지에 글을 써서 벽 틈에 남겨 두었다고 한다. 곧 죽을 걸 알면서도 그들은 왜 글을 썼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절박한 마음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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