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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4. 2022

연극으로 경험해보는 철학적 질문들

연극 《무제의 시대》리뷰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평안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좋아했을까? 아마도 재목도 없이 단순하고 명상적인 색채만으로 관념의 세계를 형상화한 그림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때로 자잘한 현실에서 벗어난 우주적 관념 안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어제 본 연극 《무제의 시대》가 그런 작품이었다.

길게 늘어진 천들 사이로 배우 박호산이 혼자 앉아 뭔가를 바닥에 열심히 쓰고 있다. 곧이어 TV와 인터넷 등 온갖 매체에서 살인, 매춘, 사기 등의 뉴스가 뒤섞여 흐른다. 주인공 비형량으로 분한 박호산은 당당하게 글을 써서 먹고 산다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그러나 곧 다른 귀신들이 등장하고 왕까지 등장하면서 작품은 생과 사, 인간과 귀신 사이를 오가는 초현실적 공간이 된다. 이 연극의 작가와 연출가는 인터넷과 메타버스의 시대가 이전 신화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도 귀신도 아닌 중간적 존재인 비형량을 입을 빌어 진실은 무엇이며 경계는 무엇인가 같은 관념적 질문을 던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검을 들고 소극장 무대를 장악하는 박호산은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빛났으며 , , , 나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움직임도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했다.   사람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었는데 누군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천장부터 길게 드리워진 천과 빛의 무대장치는 시작부터 끝까지 변화무쌍한 관념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디로  짜여진 연극이었다. 박호산은 오늘도 커튼콜  손에 얼굴을   가면을 벗는 세리머니를 했다. 연극에서 빠져나와 자아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오늘의 연극에서는  의미가  와닿았다. 관념적 질문과 대답 속을 부유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1 30일까지 대학로 씨어터쿰에서 상연한다.


이번 연극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만드는 이동원 PD와 함께 보았고 끝나고 나서도 연극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원 PD가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당장 드라마나 책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나중에 박호산과 함께 술을 한 잔 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박호산과 같은 동네에 살고 이동원 PD는 박호산과 휴대폰 끝자리 네 개가 같다는 게 술자리를 가져야 하는 주된 이유였다. 뭐 물론 바쁜 박호산이 시간이 될 때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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