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지난 토요일 오후 2시에 '독하다 토요일 시즌7'의 첫 모임이 열렸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이번에도 줌으로 만났죠. 사실 '독토' 모임이 끝나면 후기를 쓰는 건 제 담당이었는데(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그동안 책을 내거나 글쓰기 강사를 하느라 게으름을 피우면서 계속 안 쓰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조선희 선생의 대하소설 『세 여자』 때는 영광스럽게도 작가가 직접 모임에 참가를 해주셨는데 그 이야기도 쓰질 못했죠. 너무나 아깝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2022년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번 독토도 저희 부부가 저녁에 예약해 놓은 연극이 있어 한 시간을 당기는 바람에 또 리뷰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청주에 내려와서야 메모를 해두었던 앞부분을 이어 후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뤄 놓았던 리뷰를 쓰진 못해도 올해에는 다시 후기를 쓰기 시작해야죠. 늘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지금부터 잘해 보는 게 훨씬 나은 법이니까요. 사실, 쓰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약간 변태라서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암튼 이번 시즌에 읽을 책 6권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희는 당대의 한국 소설을 주로 읽는 모임입니다.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김초엽 『행성어 서점』
박상영 『1차원이 되고 싶어』
최은영 『밝은 밤』
조예은 『스노볼 드라이브』
백수린 『여름의 빌라』
우리는 첫 번째인 이기호의 단편집을 들고 모였습니다. 박재희 씨와 김하늬 씨가 먼저 도착했고 김성희 씨와 지우주 씨도 줌 카메라 앞으로 왔습니다. 이번 시즌엔 약간의 멤버 교체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분이 쉬게 되면서 저희 책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북 토크에 오셨던 독자 지우주 씨가 합류했고 박효성 씨도 새로 가입했는데 박효성 씨는 선약이 있어서 부득이 첫 회는 빠지기로 했습니다. 정아름 씨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업무가 있어서 부득이 참석을 하지 못했고요. 아직 안 온 사람들이 있어서 이십 분 정도 스몰토크를 하다가 책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처음 온 지우주 씨도 인사를 했습니다. 지우주 씨는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진 못했지만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윤혜자 씨가 지우주 씨의 유튜브를 소개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다고 하기엔 너무 고퀄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죠. 저도 봤는데 재밌더군요. 좋은 멤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김하늬 씨는 「오래전 김숙희는」이 창작과비평에 실렸을 때 읽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연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미진은 어디로」가 제일 재밌었는데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의 강민호는 정말 나쁜 놈이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임기홍 씨가 스마트폰으로 잠깐 들어와 인사를 했습니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는데 예전처럼 줌 모임이 3시부터 시작되는 줄 알고 그때라도 들어오려고 했다가 오늘만 2시에 시작해 3시에 끝난다는 걸 알고는 인사라도 하고 싶어 들렀다고 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기호의 소설집을 읽는 것은 재밌지만 서글픈 느낌이었다'는 독후감을 남겼습니다. 다들 새해를 맞아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우리나라 소설 주인공들의 직업이 작가나 편집자 등 소설가 주변 인물들로 한정된 것은 그만큼 작가들의 경험이 일천하고 결과적으로 연구를 안 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기호의 소설은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치고는 읽을 만하다는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이기호의 찌질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문체가 까다로운 독자의 점수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김성희 씨는 소설 속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212페이지의 여름 저녁 묘사를 꼽았습니다. 달은 가깝게 보이고 별은 멀게 보인다는 등 작가의 관찰력이 뛰어나고 전체적으로 문장도 깔끔하게 잘 쓴다는 평이 이어졌습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특히 슬펐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제작을 잘 선정했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고요.
김하늬 씨가 이기호의 소설들은 아주 사소하고 치졸한 얘기들이고 사람들도 쪼잔한데 그게 아주 밑바닥까지 가는 건 아니고 '얘기하면 모욕을 당할까 봐' 참고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성취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소설가 제임스 설터를 패러디한 '제임스 셔터내려' 같은 네이밍은 정말 재밌지 않느냐는 지엽적인 얘기를 했더니 김하늬 씨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줌으로 고개 끄덕이는 것 정도는 다 보입니다). 김성희 씨는 개인적으로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자신의 책을 헐값으로 팔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인공 이기호가 광주송정역에서 일산 정발산역까지 오는 게 특히 재밌었는데 정발산역2번출구에 대한 묘사가 너무 리얼해서 완전 신기하고 반가웠다고 했습니다.
박재희 씨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너무 슬펐다는 총평을 하면서 특히「최미진은 어디로」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와 윤희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풀지 못했다고 하니까 윤혜자 씨가 신이 나 '작가가 너무 팩트 생략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나도 헷갈렸다'며 가세를 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은 '분홍색 스트라이프 무늬 비키니'를 두 장 사서 각각 아내와 후배에게 선물하는 덜 떨어진 인간을 상상해 본 작가가 그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여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아무튼 강민호는 나쁜 놈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지켜보았던 지우주 씨도 뒤늦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 이번 기회를 얻었다고 하면서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를 읽고는 마음이 먹먹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소설가 본인이 등장하는 「최미진은 어디로」를 읽을 때는 '이건 소설이 아니고 에세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답니다. 소설가가 너무 리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만하죠. 소설에 등장하는 김숙희와 박창수의 이야기는 뉴스에 등장할 만한 얘기라 생각했다는 소감도 털어놓았습니다. 나라도 저럴 수 있겠다 싶은 공감 포인트가 있었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그저 잘해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수면유도제'라는 약물이 이렇게 슬픈 메타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우주 씨가 167페이지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을 언급하며 마지막에 명확하게 ,찝어주는 게 '고무줄을 확 땡겼다가 놓는 느낌'이라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감탄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김하늬 씨도 원래 이러면 촌스러워지는데 이 소설은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며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나정만'과 '권순찬'이 등장하는 단편은 읽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이기호는 여성의 심리를 참 잘 파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따로 공부를 하거나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게 아닐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정희와 나」의 265페이지의 한 부분을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번까지는 모임 마지막에 '세 줄 리뷰 쓰기'를 했었는데 이번 시즌부터는 윤혜자 씨의 제의에 의해 자기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락을 낭독하기로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최근 본 영화 《해피 아워》와 최승자가 아이오아에 있을 때 쓴 일기를 엮은 책 『어떤 낙엽들』 등을 예로 들면서 외국의 낭독 문화를 부러워했습니다. 다른 회원들도 낭독하는 걸 찬성하는 분위기여서 다음에도 낭독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기호는 유머와 슬픔을 같은 작품 안에 잘 녹이는 작가입니다. 저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오 헨리의 단편 「강도와 신경통」이 생각났습니다.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해 "손 들어!"라고 외치니까 주인이 류머티즘 때문에 한쪽 손을 들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강도와 주인이 신분을 망각하고 각자 써 본 류머티즘 약들을 대결하듯 읊다가 결국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시러 나가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이기호의 소설들은 소심하면서도 귀여운 면이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소설은 김초엽 작가의 SF초단편집 『행성어 서점』 입니다. 역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