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연극 《잇츠 홈쑈핑 주식회사》
아내와 나는 코미디 연극보다는 정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진행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의 멤버 개그우먼 성현주 씨가 코미디극에 출연한다고 해서 대학로에 있는 극장으로 갔다. 출연작은 《잇츠 홈쑈핑 주식회사》다. 100억 판매 기록을 보유한 쇼호스트 나대자가 위선적인 소비 생활을 들켜 위기에 처하자 홈쇼핑 제작진이 회장님의 단골집인 <옥떨메청국장>의 욕쟁이 할머니를 10주년 기념 방송에 출연시킨다는 게 극의 주요 내용이다.
'관객 참여형' 코미디극이다 보니 꽉 짜인 스토리보다는 배우들의 역량과 애드립에 의지하게 되는 연극인데 지난 토요일 편에서는 극을 이끌어 가는 나대자 역 셩현주의 연기력과 재치가 발군이었다. 성현주는 무대에 오르게 전 객석을 살펴 주얼리정(정보석), 윤해영, 장도연 등 그날 온 연예인 관객들을 소재로 개그를 풀어갔다. 책쓰기 워크숍 때 글을 잘 쓰는 것으로도 짐작을 했지만 그녀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무대에 오른 관객의 운동화 '혓바닥'을 이용한 멘트는 기지가 넘쳤고 평소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비속어 남발도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반면 욕쟁이 할머니로 나온 선배 개그맨 심현섭은 철 지난 개그로 헛웃음을 안겼다. 심현섭이 서울에 있는 동네 이름을 이용한 개그를 펼치면 뒤에서 후배들이 비난하는 형식이 있었는데 이걸 좀 더 세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콘의 <달인을 만나다> 시리즈도 처음부터 웃기는 게 아니라 김병만이 썰렁한 개그를 한번 던진 뒤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진짜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등장인물이 네 명뿐이라 '군계'라고 하긴 뭣하지만 성현주는 정말 군계일학이었다. 덕분에 즐거운 토요일 저녁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신이 나서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리뷰를 오늘에야 쓴다. 욕쟁이 할머니는 김영희 연기가 좋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김영희·성현주 캐스팅일 때 한 번 더 보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3월 말까지 대학로 굿씨어터에서 상연한다(탤런트 정보석은 연극이 끝난 뒤 고생하는 후배들 회식이나 하라고 금일봉을 내놓고 갔다고 한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