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의『불편한 편의점』
새 책 원고를 쓰러 내려온 주제에 한가하게 장편소설이나 읽고 있을 마음의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한창 반응이 뜨거운 베스트셀러라 어떻게 썼길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이 블로그에 쓴 작가의 필력 칭찬도 내 궁금증에 불을 지폈다. 이럴 땐 전자책이 답이다. 어젯밤 11시에 리디북스에 들어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사서 스마트폰으로 곧장 읽어나갔다. 새벽 3시까지 읽다가 자고 아침 일곱 시 반에 일어나 8시 반까지 마저 읽었다. 그만큼 책이 잘 읽힌다.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노파의 파우치를 찾아 준 걸 계기로 노숙자에서 편의점 직원으로 변신한 주인공이 자아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감화시킨다는 내용이다. 마치 동화처럼 얼른 동의하기 어려운 설정인데도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빨려 들어갈 수 있었던 건 평이한 문장으로도 이야기를 흥미롭게 구성하는 능력과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자세 등등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 출신의 편의점 사장 염 여사와 노숙자 독고 씨의 사연을 중심으로 챕터가 바뀔 때마다 주인공도 살짝 바뀌는데 문체는 삼인칭 그대로(마지막 챕터만 일인칭)라서 연작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염 여사의 말썽쟁이 아들 민식이 편의점으로 찾아가는 플롯과 배우 출신의 희곡작가 인경을 등장시킨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인경이 쓰는 편의점 이야기는 기본적 얼개만 살짝 나오는데도 읽는 이로 하여금 '액자 구성'의 매력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쓰게 된 마스크 덕분에 독고 씨가 자신의 전직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장면이나 오 여사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독고 씨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 등은 뛰어난 아이디어가 만든 이야기다. 박찬호도시락과 산해진미도시락을 비교하는 멘트나 '참참참 세트(참깨라면+참치김밥+참이슬) 같은 걸 읽으면서는 작가가 편의점에서 취재하는 모습을 그려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편의점은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차가운 통찰 밑에는 따뜻한 마음만이 세상을 구할 거라는 착한 마음이 구들장처럼 놓여 있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엉뚱하게도 정세랑 작가가 떠올랐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우정,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등을 믿는 '정세랑 월드'와 이 소설이 꽤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은 춥고 대통령 선거 때문에 서로 날 선 혀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는 시기이기에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말했다던 '친절'이 그리워져 이 책이 더 사랑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흐뭇한 소설이다. 나는 강추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