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똥파리》를 다시 보며 느낀 점들
작가가 되고 싶고 책을 쓰고 싶다가도 ‘글은 써서 뭐하나’ 하는 회의가 밀려드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꿈꾸었지만 아직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무엇보다 글쓰기의 힘은 '변화'에 있다. 무심하던 사람이 어떤 인물이나 현상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뒤죽박죽이던 사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하게 된다.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렇고 양익준 감독도 그렇다.
우리 동네 고양이 서점 ‘책보냥’에서 우연히 알게 된 동네 주민 양익준 감독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성이 너무나 싫었다고 한다. 연기자로 활동하던 양익준은 아버지의 폭력적 언행과 그로 인해 만연된 가정의 불행을 소재로 글로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낱낱이 밝히고 극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아버지 못지않게 그 가부장제를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쓰는 내내 괴로웠지만 그 글을 끝내지 않고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 고통과 깨달음이 뒤섞인 시간을 거친 뒤에 그 시나리오는 《똥파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똥파리가 가져온 파급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의 작은 인디 영화가 그토록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수백 개의 상을 휩쓴 경우는 없었다. 양 감독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지옥》에 출연한 뒤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당시 대기업에서 제작비를 주겠다는 걸 마다했던 자신을 회상했다. 돈이 없어 쩔쩔매던 시절이었지만 달콤한 자본의 유혹을 거절함으로써 자기가 의도했던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IP-TV에 돈을 내고 영화 《똥파리》를 구입해 보았다(아내는 PC나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걸 힘들어한다. 초창기 PC의 조악한 음향 시스템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10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였지만 각본, 촬영, 연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지금은 어떤 영화에도 빠지지 않고 출연하는 '인기 배우' 정만식과 어떤 영화나 연극에 출연하더라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이승연의 모습이 싱그러웠다. 극장에서 볼 때는 몰랐던 다큐멘터리 같은 촬영도 있었다(재래시장 스케치 장면).양익준과 함께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김꽃비는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똥파리를 찬찬히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아, 글쓰기엔 이런 힘이 있구나. 굳이 시나리오 작가가 펜 하나로 하늘에 수십 대의 헬리콥터를 띄우고 집채 만한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예를 들지 않더라고 글쓰기는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양익준 감독이 그때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구 상에 이런 보석 같은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양 감독을 알게 된 것도 그가 책보냥의 김대영 작가를 통해 내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구입하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변하게 한다. 글쓰기는 나를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게 한다. 글쓰기에는 인생을 밀고 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